작품명 : 석탄공장이 있는 市에 관한 농담
성 명 : 최치언

최 치 언 광부는 그날 꿈속에서 어떤 알지 못할 불길한 기운에 휩싸여 이렇게 외치고 말았다. '빌어먹을! 나 검은 콧구멍은 절대 이곳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잠시 그는 자신의 말에 대해 어리둥절하였으나 그 말과 동시에 그의 입 속에서 검은 덩어리가 튀어 나왔으므로 의식의 갈피는 빠르게 그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광부는 방금 자신의 입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 나왔다는 아주 단순한 사건의 개요를 인식하고는 목구멍에 찢어지는 듯한 괴로움이 엄습하여 올 것이라는 생각에 울상이 되었다. 그러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광부는 이건 운이 좋았던 경우의 하나라고 생각하고는 이 운이 쉽게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목 부분을 두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며 - 그것은 어쩜 늦게라도 찾아올 고통을 맞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 자신의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놀랍게도 그것은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석탄이었다. 광부는 자신의 몸 속에서 왜 이런 석탄이 튀어 나왔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의 나사가 더 깊게 그의 의식을 조여올수록 그의 목을 부드럽게 감쌌던 두 손이 점점 자신의 목을 졸라대는 것을 느꼈다. 광부는 그로 인하여 생각을 그쯤에서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아주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고 말았는데 그것은 막장에서 너무 많은 석탄가루를 마신 게 문제였다고, 그 석탄 덩어리를 발로 냅다 걷어찼다. 그러나 기적처럼 석탄이 스스로 움직여 굴러가는 그 순간과 검은 콧구멍의 발길질은 타이밍이 정확히 일치했으므로 그는 허공 중에 크게 원을 그으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내심 이 황당하고도 불길한 일에 화가 난 광부는 굴러가는 석탄을 잡으러 뛰어갔다. 석탄이 굴러간 자리엔 붉은 핏물이 하나의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순간 광부는 석탄이 피를 흘리고 있다는 아주 당연한 발견을 고도의 형이상학적인 인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이건 어떠한 불길한 징조의 예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꿈속이라는 또 하나의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는데, 그 순간 이 일을 동료들에게 알려야 할 자신의 막중한 의무를 깨닫고 꿈속에서 미련한 그 자신이 어서 빨리 깨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는 땀에 절은 작업복처럼 숭고해지는 자신을 느끼며 가슴은 풀무질처럼 부풀어올랐다. 예언은 검은 콧구멍 그에게만 찾아온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 그쯤 도살장의 신부도 어떤 꿈인가를 꾸고 있었는데 피 흘리는 석탄은 검은 콧구멍 광부의 꿈속에서 신부의 꿈속으로 굴러 들어갔던 것이었다.
짧은 꿈에서 깬 신부는 나지막이 그러면서도 아주 단호하게, 어제 새로 산 의족으로 갈아 낀 왼다리의 뒤꿈치에 골반뼈 근육과 대퇴부의 민감한 꿈틀거림으로 살짝 힘을 주며 지껄여댔다. '오! 이것은 권능에 대한 빌어먹을 광부들의 도전이다.' 신부는 피 묻은 장갑을 벗고 마치 무슨 대단한 사건의 수사관처럼 이맛살을 눈썹 쪽으로 잠시 당겨 보았다.

소문은 급속도로 마을의 광장을 휘돌아 잠시 우물곁 아낙네들의 치맛자락을 살랑거리게 하였고 우편배달부의 입을 타고 이 마을에서 오직 하나뿐인 약국의 굳게 닫힌 셔터를 새벽에 열게 하고 말았다. 석탄이 피를 흘린다고? 약사 스컹크는 그의 별명대로 길쭉한 코를 연신 킁킁거리며 채 소화되지 않는 배설물에 박혀 있는 겨자씨 같은 매운 방귀를 뿡뿡 뀌어대었다. 그의 방귀는 확실히 구린다든지 고약스럽지는 않았다. 단지 사방 십여 미터 안을 최루가스처럼 맵게 할 뿐이었다. 약사 스컹크는 소화제 드링크를 민첩하게 그것도 딱 한번의 비틈으로 열어제치고 새벽의 수탉처럼 마셔댔다. 그 소식을 그에게 전달한 우편배달부는 벌써 그와는 꽤 먼 거리인 중앙은행의 돌계단에 앉아 고통스럽게 코를 감싸고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었다. 약사 스컹크는 그것에 대하여 미안하다든지 안쓰러운 기색 없이 그에게 크게 소리쳤다. "도살장의 신부는 뭐라고 하던가?" 바로 그때 이 마을에 놀라운 기적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지상에서 줄을 매달아 떠올린 풍선처럼 태양은 마을 입구 종려나무 가지 끝에 걸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광장으로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늘어날 때마다 최초의 소문은 이미 사라지고 없고 각기 다른 소문을 만들어 거짓말 경쟁대회처럼 서로를 속이고 속임을 당하며 은근히 기쁨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시장은 아직 자신의 타조털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는 꿈속에서 타조의 등을 타고, 그러나 그의 몸무게는 백 삼십 킬로가 넘었으므로 타조는 땅바닥에 배를 대고 기다시피 초원을 달리고 있었다. 타조가 더 이상 달리기를 포기할 쯤 시장은, 내가 너를 얼마를 주고 샀는데 고작 이것뿐이냐, 하고 구두코로 인정사정 없이 타조의 옆구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타조는 검은 석탄 덩어리를 주둥이로 토해냈다. 시장은 덩치에 비해 예민하고 직감이 빨랐으므로 꿈속의 이 황당한 일에 대해 상징적인 암시를 받았다. 피 흘리는 석탄은 시장의 꿈속에도 그렇게 굴러들어온 것이었다. 시장은 돌돌 굴러가는 그 석탄 덩어리를 그것보다는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가 집으려고 했다. 그러나 시장에게 그것은 무리였다. 그가 선 채로 허리를 굽혀 손을 뻗으면 그의 손은 그의 허벅지, 정확히 말하면 무릎 연골 바로 위까지만 닿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의 올챙이 같은 배에 있었다. 때론 지나치게 튀어나온 배가 권위의 상징이 되기도 했지만 그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는, 특히 허리를 굽히려고 할 땐 방해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장은 예민한 만큼 영리했다. 그는 더 빠른 속도로 뛰어나가 석탄이 굴러오는 쪽으로 훽 방향을 틀고 그대로 땅바닥에 엎드렸다. 이젠 기다렸다가 보란듯이 잡으면 되었다. 하지만 아주 하찮고 미물인 석탄에게도 생의 의지는 있어 시장의 전방 오십 센티에서 딱 멈춰 버린 것이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간혹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타조의 신음소리만 초원에 한 가닥 바람처럼 울다 사그러졌다. 시장은 아예 울상이 되었다. 빌어먹을 광부자식들! 당장에 광산을 폐지하는 입법을 통과시켜 버려야지, 하고 시장은 자신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판단보류로 있던 안건을 생각해 냈다. 그러자 석탄은 다시 굴러오기 시작했고 비로소 시장은 그것을 냉큼 움켜잡을 수 있었다. 시장은 한동안 손아귀의 그것을 빤히 노려보았는데 갑자기 석탄이 붉은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모양으로, 조금 더 이 상태로 있다가는 석탄이 비명을 지를 것 같아 그만 그의 힘이 닿는 한 제일 먼 곳까지 던져 버리고 말았다. '재수 없게 석탄의 피라니.' 시장은 침을 퉤 뱉고 땅바닥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뒤집어진 딱정벌레처럼 버둥거릴 뿐이었다. 그것은 그의 몸의 불균형이 문제였으나 그는 또다시 저주를 퍼붓듯 석탄이 사라진 곳을 쳐다보며 지껄여댔다. 권위에 도전하는 광부새끼들은 모조리 철창에 집어넣어 버려야 해, 하며 그는 아주 구체적인 광부탄압을 구상해 보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들어 앞을 보았을 때 태양은 종려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었고 타조는 아직도 땅바닥에 쓰러져 가끔씩 몸을 뒤채이며 울고 있었다. 시장의 육중한 몸을 등에 태우고 초원을 달린다는 것이 사실상 타조에겐 죽겠다는 각오였던 것이다.

밖이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더 이상 꿈이나 꾸며 타조와 함께 초원에 엎어져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시장은 그때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리고 황급히 여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각료 회의를 준비시켰다.

한편, 검은 콧구멍은 작업장을 돌아다니면서 광부들에게 그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광부들이 자신의 꿈에 그닥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낀 검은 콧구멍은 광야로 내몰린 예언자의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신의 가난한 집으로 향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그는 극도로 외로웠고 그의 꿈이 점점 희미하게 사라져 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내가 조용히 그의 옆에 누웠다. 그리고 아내는 그의 가슴 춤으로 손을 집어넣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상심에 빠진 그의 남편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의 가슴에 수북히 난 털을 빗질하듯 훑어 주었다. 그것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검은 콧구멍은 배꼽아래 뜨거운 부근에서 힘차게 부풀어오르는 그것을 아내의 손을 잡아끌어 함께 꼼짝못하도록 오랫동안 잡고 있었다. 순간 느닷없이 그의 집의 문이 벌컥 열리고 일군의 광부들이 찾아왔다. 광부들은 검은 콧구멍 내외의 그 같은 행동을 애써 외면하고는 각자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급작스러운 사태에 어떤 수습도 하지 못한 검은 콧구멍 내외는 그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 늙은 광부가 입을 열었다.

"자네의 꿈 이야기를 들었다. 석탄이 피를 흘리는 일은 백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불길한 징조로서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런 꿈을 꾼 적이 있고 그 뒤로 탄광에 대재앙이 몰려왔다." 늙은 광부는 조금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혼자 지껄여댔다. 그러나 다른 광부들은 그 이야기보다 검은 콧구멍 아내의 거대한 젖무덤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었다. 늙은 광부는 검은 콧구멍 아내의 젖무덤으로 인하여 자신의 말이 그 어떤 권위를 상실한 것을 느끼곤 검은 콧구멍의 아내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어찌할 틈도 주지 않고 여자의 봉긋한 젖무덤에 자신의 노란 헬멧을 벗어서 덮어주었다. 그 시간적 틈을 비집고 검은 콧구멍이 침대 위에서 일어섰다. "나는 예언을 보았다. 그 예언은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 행동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이런 이야기였는데, 순간 동료들은 무너진 막장에 갇힌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어지럽게 쳐다보곤 하였다.

이쯤에서 늙은 광부는 시에서 탄광을 폐지하고 그곳에 대규모 도박장을 차리려고 하는 비열한 음모가 날로 더해지는데, 이젠 그것이 절정에 달했고 검은 콧구멍의 꿈속에 나타난 피 흘리는 석탄은 우리에게 어떤 결단을 요구한다고 다시 한번 검은 콧구멍의 말을 정리하여 자신의 오랫동안의 생각인 양 광부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토론은 계속되었다. 검은 콧구멍의 아내는 노란 헬멧을 껴안고 이젠 잠이 들어 버렸다. 결국 검은 콧구멍은 곧 있을 어떤 사태에 대항할 광부의 대표가 되었다.

각료회의 소집 통지서가 각 유지들에게 배달되었다. 각료회의 인원은 기껏해야 도살장의 신부와 약사 스컹크, 각 구역의 어리석은 통장들 그리고 시장이 전부였다. 소집 통지서를 받은 신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열 두 번째 황소의 머리에 도끼를 내려찍고 도살장안을 한번 휙 둘러보았다. 황소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었으나 신부는 개의치 않았다. 솟구친 피가 그의 얼굴에 튀었다. 잠시 그는 얼굴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왠지 그 순간 이번 사건은 의외로 빨리 끝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근거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도살장의 신부는 검은 사제복으로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느린 속도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도살장을 막 나서자마자 태양이 종려나무가지에 걸려 꿈쩍 않는 것을 보곤 황급히 도살장안으로 되돌아갔다. 혹시 이게 세상 종말의 징후가 아닐까. 그는 도살장안에서 유일하게 햇살이 비껴드는 창문을 향해 무릎을 꿇으려 했으나 새삼스럽게 당황하고 말았다. 왼다리에 의족을 착용하고 있었으므로 무릎 꿇는 행동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도살된 소의 피가 흥건하게 젖어있는 바닥을 잠시 들여다보다 그는 선 채로 비껴 낀 햇살을 바라보곤 이렇게 외쳤다. "부디 신이시여 저에게 주어진 이 잔을 피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의 기도소리는 사지가 도륙난 소들의 아직 식지 않은 더운 살 깊이 박혀드는 듯 했다. 그러나 죽은 소들은 조용했다. 너무나 조용한 느낌에 신부는 어떤 공포감을 이물스럽게 이빨로 씹는 듯해서 도살장의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누런 가래가 낀 침은 소들의 붉은 피에 섞여 잠시 흐르다가 멈추었다.
그 즈음 약사 스컹크도 각료회의에 나가기 위해 소화제를 위장 깊숙이 털어 넣고 있었다. 오래된 소화불량이란 소화제를 수시로 복용하고 위장에서 잘 섞이도록 몸을 좌우로 흔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기다렸다는 듯이 방귀가 항문에서 대포를 쏘듯 터져 나오는 것이다. 사실 약사 스컹크는 이 방귀로 인하여 마을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약사 스컹크의 무례한 방귀에 시청으로 탄원서도 내보고 직접 찾아가 조리 있게 시장에게 말을 해보았으나 그때마다 시장은 그들에게 한 여름인데도 매번 더운 차를 내어주곤 서류철만을 곤혹스럽게 들여다 볼 뿐이었다. 그것은 개인의 생리작용이기 때문에 시의 법으로는 불가항력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장은 조금 더 참아보자는 제안을 했고, 더운 차는 이제 적당히 식었으므로 사람들은 그 차를 후룩 마시곤 황송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시청 정문을 빠져 나올 때쯤에야 비로소 서로의 심란한 눈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 눈길들이 서로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은 좀더 현명한 시장을 다음 번엔 꼭 뽑아야겠다는 것이었지만, 시장은 삼십 년째 이 시에서 재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약사 스컹크는 새 약사가운을 장롱에서 꺼내 들고 혼자 되뇌어 보았다. '석탄의 피? 피 흘리는 석탄이라니. 석탄이 소화불량에 걸린 것도 아니고 변비가 심각해 묵은 된똥을 누다가 항문이 파열된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석탄이 피를 흘린단 말인가.' 그리고 약사 스컹크는 창문을 열고 저 멀리 광장에 응집해 있는 마을 사람들의 새까만 머리통을 한번에 툭 돌려 틀고 벌컥벌컥 그들의 더운 피를 들이마시는 생각에 빠져 버렸다. 무엇인가 설명될 수 없는 악마적인 힘이 그의 정강이 뼈 부근에서 목젖 부근으로 힘차게 밀려 올라왔다. 약사 스컹크는 마지막으로 아랫도리를 벗고 항문에 그 약국에서 제일 크다는 파스를 붙였다. 후끈거리는 열기가 엉덩이에 전해질쯤 약사 스컹크는 약국의 셔터를 내리고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었다. 파스가 제 구실을 다한다면 시장 앞에서 방귀는 새어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주머니에 찔러둔 발포성 소화제를 만져 보았다. 모든 것이 든든했다. 약사 스컹크는 그때 골목길에서 나오는 도살장의 신부를 보았다. 그 둘은 아주 가볍게 꽃잎처럼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나 함께 걷지는 않았다. 신부는 약사 스컹크보다 정확히 십 미터는 더 앞질러가고 있었다. 약사 스컹크도 그 거리를 의식적으로 유지해 주었다. 은밀한 묵계 그것만이 약국과 교회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조합광장에 놓인 연단은 그리 크지 않았다. 검은 콧구멍은 붉은 머리띠를 두르곤 힘차게 연단위로 뛰어 올랐다. 연단이 순간 심하게 흔들렸으나 검은 콧구멍은 그의 민첩한 동작으로 연단 위에서 중심을 잡았다. 그러자 그 아래 광부들의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광부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복장과 얼굴이었다. 석탄으로 검게 찌든 얼굴에 해지고 낡아빠진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자 위에 일률적으로 붙어 있는 전등은 마치 분노에 들끓는 그들의 또 다른 눈 같았다. 검은 콧구멍은 그 눈만을 쳐다보며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나 검은 콧구멍은 피 흘리는 석탄을 보았다. 그것은 이 탄광촌에 불어닥칠 대재앙을 예언한다. 시의 간사한 모리배꾼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 광부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갈 음모를 꾸미고 있다. 이곳을 가진 자들의 방탕한 여가를 위한 한갓 도박장으로 만들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뭉치지 않으면 우린 죽는다." 검은 콧구멍은 자신 속에서 어떻게 이런 우렁차고 당찬 목소리가 나오는지 순간 의아해 했지만, 이내 자신의 말에 자신이 감동하여 생목이 메이는 관계로 그의 다음 말들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광부들은 함성을 질렀다. "우리에게 무기를 줘라. 우리의 손에 그들의 피를 묻히자." 광부 중 유달리 다혈질적인 젊은이들이 연단 아래로 몰려와 손을 높이 쳐들고 외쳐대었다. 늙은 광부는 연단 아래 의자에 앉아 감격에 겨운 듯 그러나 어떠한 동요도 보이지 않고 힘들여 절도 있게 박수를 쳐대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아무도 알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더욱 광적으로 자신이 뱉아 낸 말들의 홍수에 잠겨갔다. 검은 콧구멍은 환호하는 광부들과 일일이 뜨거운 악수를 하며 무엇을 할 것인가를 혼자 나즈막이 내깔겨 보았다. 바로 그때 한 광부가 그에게 다가와선 다급한 목소리로 그러나 그의 귀에만 들릴 수 있도록 속삭이며 말했다. "시에서 각료회의가 소집되었다 합니다. 그것은 피 흘리는 석탄에 관한 안건인데, 어떻게 피 흘리는 석탄의 예언이 그들에게 샜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태는 심각한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양을 한번 바라봐 주십시오." 정말 태양은 제 1갱도 부근에 멈춰 있었다. 갱도는 검은 콧구멍이 바라보는 쪽에서 어른 키 한 뼘 정도의 높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대표를 부른다고 합니다." 그 광부는 황송한 듯 그렇게 말하곤 검은 콧구멍의 유별나게 검은 콧구멍의 테를 쳐다보았다. 검은 콧구멍은 다시 연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휘청 그가 넘어졌으나 그 아래 일군의 젊은 광부들이 그를 받아 연단위로 밀어 올렸다. 검은 콧구멍은 그의 실수가 광부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 저기 제 1갱도를 보아주십시오. 태양이 저곳에서 멈춰 버렸습니다." 그때까지 그 놀라운 일을 발견하지 못했던 광부들은 서로 먼저 멈춰버린 태양을 보려고 아우성을 치며 격렬하게 옆 사람의 몸을 밀치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검은 콧구멍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핏대를 세우며 외쳐댔다 "제 1갱도는 오래 전 우리 선조 광부들께서 맨손으로 개척한 갱도입니다. 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들이 우릴 부릅니다. 자 모두다 시청으로 갑시다. 그곳을 접수합시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광부들의 동요는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일순 조용해졌다. 검은 콧구멍은 광부들의 돌연한 변화에 일격을 맞은 듯 또 한번 연단 위에서 떨어질 뻔했다. 몸의 중심을 가까스로 잡으며 바라본 늙은 광부의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이젠 늙은 광부의 동조가 필요한 것이다. 잠시 동안 늙은 광부와 검은 콧구멍의 무언의 토론이 벌어졌다. '그건 너무 과격하지 않은가?' '아니오 지금 칼을 빼들지 못하면 우리가 베입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그 모든 결과는 누가 책임지나?' '나 검은 콧구멍이 합니다.' 광부들은 숨을 죽이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잠시 후 늙은 광부가 졌다는 듯 의자에서 일어나 이렇게 외쳤다. "검은 콧구멍을 따라 시청을 접수하러 갑시다." 시청의 각료회의는 오후 두 시에 시작되었다. 각 구역에서 불려나온 어리석은 통장들은 의자에 앉자마자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다. 시장이 여비서를 대동하고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비서는 언제 그렇게 많이 준비했는지 가슴에 안은 서류더미에 묻혀 가끔씩 발을 헛디뎠다. 그때마다 여비서는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질렀는데 졸고 있던 각 구역의 통장들은 감고 있는 눈을 더 꾹 감으며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장은 도살장의 신부와 약사 스컹크에게 악수를 청했다.

시장의 팔은 몸에 짧게 붙어있는 꼴이라서, 신부와 약사 스컹크는 시장에게 바싹 다가가 바로 그의 주둥이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악수를 해야 했다. 시장의 입에서 막 잠에서 깬 사람 특유의 신 사과즙 냄새가 났다. 약사 스컹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주머니에서 발포성 소화제를 꺼내 시장에게 복용하도록 권했다. 시장은 약사 스컹크와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황급히 약을 받곤 뒤로 물러섰다. 약사 스컹크는 잠시 뼈저린 외로움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다.

한편, 검은 콧구멍이 집회의 열기에 들떠 그의 가난한 집에 돌아 왔을 때 아내는 커다란 솥 가득 목욕물을 데우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어지러운 생각인양 집안 가득 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검은 콧구멍은 아내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시청으로 출전하기 전 마지막으로 집에 들린 것이었다. 아내는 검은 콧구멍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의 무거운 구둣발 소리로 알 수 있었으나 모르는 척 그대로 자신의 생각에 집중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잘되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어서 빨리 검은 콧구멍이 자신에게 다가와 어떠한 행동을 해주길 바랬다. 그녀의 몸은 젖어 있었다. 검은 콧구멍은 아내의 수세미 같은 머릿결을 한 손으로 어렵게 쓸어 올리고 또 한 손은 아내의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어 제꼈다.

아내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가 서서히 끓는 물처럼 풀어지자 검은 콧구멍은 아내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 쪽으로 거칠게 돌려세우고 길게 입 맞춰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누렇고 기다란 혓바닥으로 아내의 뺨을 위에서 아래로 몇 번인가를 핥아 주었다. 아내도 몇 번인가를 흠칫 몸을 떨었다. 뿌옇게 피어오른 수증기 속에서 알몸의 검은 콧구멍 내외는 끓는 물보다 더 뜨겁게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고 끓어올랐다. 어쩜 일이 잘못된다면, 이것이 마지막 아내와의 잠자리 될 거란 생각이 들자 검은 콧구멍은 지금까지 생각으로만 망설였던 여러 가지 체위를 바닥에 누운 아내의 몸 위에서 시도해 보았다.

그 스스로도 조금은 어색하고 아내도 그의 돌연한 변화에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지만 그러나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운명이 그들을 갈라놓지 않게 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그 어색함을 이겨내었다. 끓던 물도 식고 수증기가 바닥으로 갈아 앉자 검은 콧구멍의 아내가 말했다. "이젠 당신은 탄광촌의 영웅이 됐어요 이웃집 처녀들이 당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어제와는 달라졌는걸요. 당신이 또 다시 나 아닌 다른 여자와 놀아난다면 그땐……." 여자는 검은 콧구멍의 축 늘어진 성기를 한 손으로 잡고 세게 잡아 당겼다. 검은 콧구멍의 입 속에서 쇳조각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검은 콧구멍은 고통을 참아내려고 본능적으로 그의 아내의 엉덩짝을 세게 움켜잡았다. 아내의 입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누구도 먼저 손에 힘을 빼지 않았으므로 고통은 집안의 정적 속에서 길게 이어졌다. 이내 검은 콧구멍이 체념하듯 이렇게 말했다. "그땐 당신이 저 곡괭이로 나를 죽이시오" 검은 콧구멍이 손으로 가리킨 현관문 앞엔 배의 닻처럼 생긴 곡괭이자루가 모로 세워져 있었다. 그의 아내는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의 손에서 검은 콧구멍의 성기를 풀어주었다.

그와 동시에 검은 콧구멍의 손에서도 힘이 빠져나갔다. 그들은 또 다시 격렬하게 요동치며 서로의 몸 속으로 탐닉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찬장 위의 접시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고 냄비와 국그릇들이 덩달아 요동쳤다.

어리석은 통장들은 이젠 아예 시청 회의실 탁자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졸고 있었다. 그들은 가끔씩 잠꼬대를 해댔는데 대부분 어젯밤에 심하게 퍼부어 댔던 술자리의 자잘한 시비 한 토막을 거리낌없이 지껄여댔다. 여비서는 서류철 속에서 피 흘리는 석탄에 관한 보고서를 찾느라고 한동안 회의 탁자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고 서류가 이게 아닌데 하는 최종적인 판단에 그만 울고 말았다. 시장은 기가 막혔으나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면서 이를 악물고 회의를 시작했다. 그는 먼저 도살장의 신부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에 대하여 물어 볼 참이었으나 신부는 경건하게 눈을 꼭 감고 있었으므로 약사 스컹크에게 앞으로 벌어질 마을 사람의 소요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약사 스컹크는 그런 일쯤이야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자신이 광장으로 나가 항문에 붙여놓은 파스를 떼곤 방귀를 한 두 번 뀌면 그것으로 마을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해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으면서도 그러나 일리 있는 말이었다. 시장은 한시름을 던 듯한 기분에 한 귀퉁이에서 울고 있는 여비서를 용서할 아량으로 차를 준비해 올 것을 명령했다. 여비서는 고양이처럼 샐쭉해져 대답없이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그러나 문을 닫지 않고 나갔으므로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군중들의 지껄여댐이 들렸다. 시장은 순간 그 소리를 듣고 놓았던 한 시름을 다시 마음에 올려놓았다.
"나는 광부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은 거외다." 시장은 이번 기회에 광부들을 이 마을에서 내쫓아내고 싶었다. 탄광은 몇 해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고 그것은 그에게 큰 골치거리였다. 차라리 이웃 시에서 석탄을 수입하는 것이 훨씬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시장은 탄광을 폐지하고 그곳에 대규모 자본을 다른 시에서 끌어와 지상최대의 도박장을 만들면 관광 수입과 기타 여러 부대시설 사용료에서 얻을 수 있는 순 이익이 석탄산업보다 낫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시장은 각료회의 때마다 여러번 탄광폐지를 주장했다. 시장은 그런 말들을 또 혼자 지껄여댔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말을 낚아채갈까봐 시장은 얼른 자신도 오늘 피 흘리는 석탄을 꿈속에서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타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혹 누군가 고급 타조털 침대를 빌미삼아 자신의 도덕성을 공격한다면 회의는 자신에 대한 탄핵으로 흐를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시장은 자신의 몸통보다 두 배나 긴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느긋이 기대곤 도살장의 신부를 내려 까보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말을 들은 도살장의 신부는 내심 놀랐으나 애써 태연한 척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시장 당신이 본 건 번개탄 쯤 되겠지 하는 약간의 조롱이 섞여 있었다. 감히 신의 대리인인 나와 동격으로 놀려고 하다니, 생각 같아서는 한껏 비웃어주고 싶었으나 그는 자신의 감정을 적당히 제어하며 회의실 창문 아랫단에 살짝 비껴든 햇살을 쳐다보곤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피 흘리는 석탄이 문제가 아니라 멈춰버린 태양이 더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건 필시 신이 굉장히 노여워하는 일을 누군가 저질렀기 때문인데 우리 모두 그 문제에 대하여 심사숙고하는 자세로 회의를 진행해야 합니다." 도살장의 신부는 소의 정수리에 도끼를 내려치듯 탁자를 힘차게 내려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차고 위협적이었든지 졸고 있던 어리석은 통장들이 하나 둘씩 잠에서 깨어났다. 순간 시장은 도살장 신부의 단호한 의지에 감복하여 자신도 모르게 할렐루야를 외치고 말았는데 그것으로 인하여 이 회의는 종교적 문제로 흘러가는 듯하게 되었다. 분위기가 도살장의 신부 쪽으로 넘어가자 약사 스컹크는 재빨리 빌어먹을 광부들을 더 이 마을에 거주하게 하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그때마다 발포성 소화제를 꺼내 마셨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시장은 단호하게 일어서서 종합하여 말했다. "문제는 광부들이 이 마을을 적자의 수렁으로 몰아 간다는 것이외다. 이런 연유로 신께서 피 흘리는 석탄과 멈춰버린 태양을 어떤 상징적 암시로 본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만만치 않은 힘의 대립을 파악한 도살장의 신부는 더 이상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광부들이 땅속에서 석탄을 캐내지 못하도록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태양은 더 이상 우리들의 머리꼭대기에 그 온화한 빛을 내리쏟지 않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리고 그곳에 도박장을 세운다는 계획에 자기는 적극 찬동하며 그렇게 된다면 부대시설로 들어서는 음식점에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자기는 더 열심히 소를 도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노골적인 자신의 음흉한 속셈이 혹 들통 난 것은 아닐까하고 흘낏 통장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리석은 통장들은 그저 박수만 쳐대었고, 약사 스컹크는 도박장이 세워질 경우 자신에게 떨어질 이익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셈하고 있었다. 그때 여비서가 더운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여비서가 들어오는 동시에 어리석은 통장들은 다시 눈을 감고 졸기 시작했다. 여비서의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그들은 더 깊이 보다 빠르게 음탕한 꿈에 잠겨갔다. 도살장의 신부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읊조렸다. "오늘부터 낡은 도끼는 모조리 버리고 새로운 도끼를 사두어야겠어. 이건 신이 나에게 준 최대의 기회다." 시장은 그런 그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꿈속에서 본 타조를 생각해보았다. 다음 번엔 낙타를 타고 초원을 달려보아야지 하면서 여비서가 가져온 차를 아무런 생각 없이 단번에 마셔버리곤 잠시동안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다가 타조를 얼마에 주고 산 건데 이 따위 밖에 되지 못하지 하고 말한 자신의 꿈속 말을 되뇌어 보았다. 그리곤 황급히 주둥이를 딱 벌리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회의실을 뛰쳐나가 버렸다. 그리고 어두운 복도 저편에서 증오에 찬 소리가 터져나왔다. "내가 시장을 사퇴하던지 저년을 당장 갈아버리든지 할테다." 여비서는 도살장의 신부에게 곧 있어 광부의 대표가 도착할 것이라고 속삭여 주었으나 도살장의 신부는 도박장이 들어서면 하루에 몇 마리의 소를 더 도축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헛말을 하고 말았다. "닥치는 대로 죽여버리지 뭐." 여비서는 그 말을 종교적으로 해석한 나머지 그 옛날 마녀 화형식을 생각해내곤 자칫 음탕하게 보일 수 있는 자신의 짧은 스커트를 황급히 무릎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러나 짧은치마는 볼록한 엉덩이춤에 걸려 내려오지 않고 주름만 팽팽하게 펴질 뿐이었다.

그때 구겨진 주름들처럼 검은 콧구멍과 그의 광부들이 시의 중앙은행을 지나 시청 앞 광장으로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검은 콧구멍은 광부들의 대오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며 시민들과의 마찰을 최대한 피하며 그러나 군중들을 그들의 편으로 선동 할 수 있는 구호를 외치며 물결처럼 유장하게 시청으로 방향을 틀었다. 광부들이 대오를 이루며 지나가자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시민들은 열렬하게 박수를 쳐주었다. 어떤 여자들은 검은 콧구멍에게 지금 막 자신이 애인에게 받은 꽃다발을 안겨주고 수줍게 다시 애인의 품으로 뛰어가곤 하였다. 검은 콧구멍은 자신의 손가락이 자신도 모르는 힘에 휩싸여 꽃을 안겨주는 여자들의 엉덩이를 만질까봐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검은 콧구멍은 한때 자신도 어떻게 해보지 못할 만큼 여색을 탐하곤 했었다. 그 버릇이 다시 이 중요한 순간에 나온다면? 검은 콧구멍은 그런 일에 대해선 생각하기도 싫어졌다. 그러한 자신의 의지의 확인으로 여자들에게서 받은 꽃다발을 군중들에게 던져 주곤 하였다.

그때마다 군중들의 환호소리가 시의 마을 전체를 높이 들었다 내려놓곤 했다. 군중들 틈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 본 검은 콧구멍의 아내는 남편을 향한 질투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몇 명의 경찰관과 수위들은 쉽게 진압되었다. 시의 오랜 동안의 평화로 인하여 그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진압해야하는지 전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이 기껏 아는 것은 시위대를 보고 큰 소리로 위협하는 것 정도였다. "당신들은 시의 위대한 법을 어기고 있다." 그 말뿐이었다. 그들은 사실 시의 법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윽고 광장은 어떤 알 수 없는 기운으로 붉게 물들어 갔다. 그때 검은 콧구멍은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고 말았다. "빌어먹을 나 검은 콧구멍은 절대 이곳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검은 콧구멍은 자신의 말에 어리둥절하지 않았다. 검은 콧구멍은 왼쪽 팔에 완장을 둘러맸는데 거기엔 광부대표라고 써 있었다. 그리고 노란 헬멧을 눌러쓰고 곡괭이 자루를 어깨에 둘러멘 막장의 작업복 차림으로 회의에 참석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배때기에 기름이 낀 저 시청 안 모리배 놈들의 기를 옴팍 죽이고자 한 것이다. 시청은 사실상 이미 광부들에 의해 접수된 상태였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시청 안의 시장과 여비서와 도살장의 신부와 약사 스컹크 그리고 어리석은 통장들뿐이었다. 검은 콧구멍은 이쯤에서 자신이 영웅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적의 소굴에 홀연 단신으로 들어가 결판을 짓는 행동을 광부와 군중들 앞에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늙은 광부에게 자신이 먼저 들어가서 이야기를 해보고 그 다음에 사태의 추이를 봐서 광부들을 투입해줄 것을 부탁했다. 늙은 광부는 이쯤에서 자신도 뭔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그곳에 함께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외로 검은 콧구멍은 단호하게 그것은 안 된다고 말하곤 시청 안으로 혼자 쏜살같이 들어가 버렸다. 늙은 광부는 무엇인가 검은 콧구멍에게 빼앗긴 것 같아 잠시 그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자신이 탄광에서 심심찮게 휘두르던 권력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늙은 광부는 힘없이 광부들 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도살장의 신부는 그날 있었던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의 졸음과 그것보다 더 짧은 꿈속에서 그가 보았던 피 흘리는 석탄에 대한 어떤 상징성을, 마을의 탄광을 폐지하는 쪽으로 끌고 가보려고 다시 한번 떠올려보았다. 탄광폐지의 신학적 명분 그것이 그에겐 필요했다. 여섯 마리 째 소의 뿔과 뿔 사이에 도끼를 내리치려는 순간, 손에 들었던 도끼의 무게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고운 모래가 머릿속에 들이부어 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대로 선 채로 졸았던 그 선잠에서, 순간 기적처럼 나타났던 시꺼멓고 동그란 그것은 분명 석탄이었는데 그것은 검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피가 검은 석탄 위에 붉게 퍼질 때 졸음에서 깨어났고 도끼는 소의 정수리를 쪼개어 놓고 있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태양이 멈춰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의 과정을 다시 밟아 내려오자 신부는 불현듯 도살된 소의 마지막 울음처럼 외쳤다. "오! 이것은 권능에 대한 빌어먹을 광부들의 도전이다." 그리고 절뚝거리며 몸을 돌렸을 때 여비서는 그 앞에서 자신의 짧은 치맛단을 끌어내리려고 버둥대고 있었다.

검은 콧구멍이 회의실 문 앞에 나타났다. 회의장 안은 깊은 막장처럼 조용했다. 한쪽 어깨에 곡괭이를 을러메고 노란 헬멧을 쓴 검은 콧구멍은 왼쪽 팔에 비딱하게 흘러내린 광부대표 완장을 바로 잡았다.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모습은 광부의 대표였다. 검은 콧구멍은 자신의 움츠려드는 마음을 자신에게 속이려고 연신 쌍욕을 지껄여 댔는데, 그것은 광부들이 석탄을 캐면서 지껄이는 오래된 욕설이었다. '이런 깊은 곳에 숨어 있을 바엔 검지나 말지 빌어먹을 새끼들.' 뭐 이런 말이었는데 문 앞에서 그는 이 말을 두 번인가 하곤 이내 회의장의 정적에 다시 기가 죽어 버렸다. 그러나 검은 콧구멍은 순식간에 막장을 빠져 나온 사람처럼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그것으로 그는 다시 쭈그러진 자신의 기를 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에게 위안을 주며 말했다. "나를 이곳에 부른 이유가 뭐요?" 여비서는 검은 콧구멍 광부의 불량한 말투와 말할 때마다 희게 빛나는 이빨을 보곤 가슴속 욕망에 불이 확 달아 붙는 것을 느꼈다. 검은 콧구멍도 자신을 향한 여비서의 은밀하고 수상쩍은 눈빛을 읽어냈으나 애써 냉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검은 콧구멍은 잠시 흔들렸다. 예전의 버릇이 욕망의 불길을 피해 도망가려는 그의 두발을 꼼짝없이 붙잡고 있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도살장의 신부는 광부에게, 더 이상 이 마을에서 석탄 채굴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검은 콧구멍은 도살장의 신부 따위의 말은 성가시다는 듯 자신의 모자를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성큼성큼 그에게 걸어갔다. 순간 도살장 신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광부에게 위협을 느낀 왼다리의 의족이 차갑게 굳어감을 느꼈다. 그러나 광부는 의외로 부드럽게 어깨에 둘러메고 온 곡괭이를 신부의 손에 쥐어 주었다. 도살장의 신부의 몸은 광부의 돌연한 부드러움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으나 신부 그 자신은 심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그를 더 난처하게 하는 것은 곡괭이 자루였다. 도살장의 신부는 나름대로 도끼에는 이력이 나 있었지만 곡괭이 자루는 처음인지라 그것을 어떻게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지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은 콧구멍의 광부는 그러한 도살장의 신부의 마음을 읽었는지 곡괭이 자루를 그의 오른손에 바로 쥐어주고 왼손을 오른손에 얹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신부의 오른쪽 어깨 빗장뼈 위로 들어 올렸다. 광부는 이제 자신이 내팽개친 모자를 주워들어 신부의 머리 위에 왕관처럼 경건하게 씌어주었다. 도살장의 신부는 이 급변한 사태를 어떻게든 수습하려 이렇게 소리쳤다. "빌어먹을 광부 녀석 신의 권능에 도전한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다." 그러나 검은 콧구멍은 도살장 신부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의 권능은 저 밖에 모여있는 광부들이 주었다. 그럼 너희 신의 권능은 누가 주었는가?" 검은 콧구멍도 자신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랐으나 하여간 무척 근사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무식한 광부놈에게 예상치 않은 일격을 받은 도살장 신부는 아득히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입은 정신적 공황으로 크게 벌어졌다. '정말 신의 권능은 누가 주었단 말인가?' 그러나 검은 콧구멍은 끓어오르는 색욕을 자신도 더 이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신부를 내버려 둔 채 여비서의 음탕한 치맛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시청 안 광장엔 군중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는데 시장은 화장실에서 뜨거운 차에 데인 입안을 찬물로 헹구고 창문을 통해 그 광경을 바라보다 그들의 검은 머리통에 기름을 붓고 불을 확 싸질러 버리면 멋있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데인 그의 입안이 다시 후끈거려왔다. 그가 바닥에 침을 한번 퉤 뱉고 거울을 들여다 본 순간 그의 머리통 뒤로 싸늘한 한줄기 바람이 지나가는 듯하여 다시 돌아 본 창문밖에는 불길한 예상대로 광부들이 곡괭이 자루를 높이 치켜들고 함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올 것이 이렇게 빨리 오다니. 시장은 빨리 무슨 대책인가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대책이 세워지면 그 대책이 이 사태를 수습하는데 늦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화장실을 나서 회의장으로 뛰어갔다.

시장이 회의실로 뛰어들어갔을 때 검은 콧구멍의 광부는 여비서의 치맛단을 엉덩이 위로 쓸어 올리고 있었고 도살장의 신부는 곡괭이 자루를 둘러멘 채 허공에 대고 성부와 성자와 성신를 외치며 광부에 대한 분노로 울부짖고 있었다. 어리석은 통장들은 이젠 아예 서로서로 몸을 포개고 보란 듯이 탁자 밑에 곯아 떨어져 있었다. 잠에서 깨면 그들은 다시 바뀐 정책과 인물을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의 잠은 하급 관료들의 정치적 생존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시장은 예민하고 직감이 빨랐으므로 최대한 침착하게 자신의 볼록한 배에 두 손을 가지런히 얹고 권위있게 검은 콧구멍 광부를 보며 말했다. "더 이상 광부들은 이 시에 거주할 수 없소. 그것이 이번 회의의 결론이외다." 검은 콧구멍은 그제서야 그 자신이 광부들의 대표로 이곳에 온 것을 생각해 내곤 여비서를 잠시 뒤로 물리치며 시장에게 말했다. "이유는 뭐요?" "신부와 내가 꿈속에서 신의 예언으로 본 피 흘리는 석탄과 무엇보다 저 멈춰버린 태양 때문이오." 검은 콧구멍은 시장이 자신의 꿈을 역으로 이용하여 비열한 공작을 펼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멈춰 버린 태양이 우리 광부들과 어떤 연관이 있단 말인가?' 검은 콧구멍은 분노에 싸여 어금니를 몇 번 갈아대곤 곧 이렇게 맞받아 쳤다. "그렇담, 우리도 더 이상 시장 당신을 인정 할 수 없소. 그건 내가 꿈속에서 본 그 피 흘리는 석탄의 예언 때문이오. 그리고 저 멈춰버린 태양도 그 이유로 넣어둡시다." 시장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촌의 일개 무식한 광부가 어떻게 자신의 꿈을 역으로 이용할 생각을 했는지 시장은 기가 찼다. 시장은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시장에겐 시민들이 부여한 법의 권능이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당신들의 이번 집단 행동은 시에 대한 도전이며 반역이외다. 그 책임은 누군가 목숨의 대가로 져야 할 것이외다." 시장은 자기가 생각해도 한 시의 지도자로써 모자람이 없는 의연한 말투와 행동이었으므로 다음 선거에 지금의 이 상황을 각색하여 선거용으로 써 먹는다면 당선은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흡족하게 생각하였다. 검은 콧구멍은 시장에게서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듣자 순간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뒤를 돌아보자 여비서가 혼자 달아오른 몸을 비비꼬고 있었다. 검은 콧구멍은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비서의 블라우스를 거칠게 열어 젖혔다. 그 바람에 여비서의 갤갤 풀린 눈동자 같은 단추들이 사방으로 뜯어져 나갔다. 검은 콧구멍은 여비서의 젖무덤을 한 입 깨물고는 그녀의 허리를 힘차게 자신의 몸 쪽으로 끌어안았다. 여비서의 단말마 같은 더운 신음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약사 스컹크는 이 모든 사태를 조심히 관망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복잡한 무엇인가를 계산하듯 빠르게 흔들렸다.

늙은 광부는 시청 안으로 들어 간 검은 콧구멍이 약속된 시간 내에 나오지 않자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가 할 일이 생긴 것이었다. 조금 전부터 광부들은 검은 콧구멍이 나오지 않자 조금씩 대열이 흔들리고 있었다. 늙은 광부가 대오의 앞으로 다시 나가려 하자 광부들이 길을 비켜 주었다. 그것으로 늙은 광부는 자신의 권위를 되찾은 거였다. 그의 마음은 빨리 광부들 앞으로 나가고 싶었으나 그의 걸음은 한없이 거드름을 피우며 천천히 나아갔다. 마치 사열을 받는 지도자와 같은 심정으로 늙은 광부는 대오 앞에 섰다. 늙은 광부는 동요하는 광부들을 향해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이렇게 말했다 "검은 콧구멍은 실패한 것 같다. 이제 내가 저곳으로 들어 갈 것이다" 광부들의 환호성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덩달아 시민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 재미있는 사건이 이대로 맥없이 끝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잠시 잠깐 그들을 엄습했으나 다시 광부들이 대오를 정비하여 사건을 더 길게 만들어갈 것이라는, 이를테면 좀 더 재미있는 구경이 남아있다는 구경꾼들만이 가지는 안도의 환호성이었다. 늙은 광부는 미리 준비해둔 완장을 팔에 둘렀다. 거기엔 광부의 지도자라고 써져 있었다. 그러나 어떤 광부도 그것에 토를 달지 않았다. 늙은 광부가 군중을 뒤로 한 채 시청을 잠시 바라보다 긴 호흡을 들이마시며 한 걸음 떼려 할 때 누군가 쏜살같이 시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누군가는 검은 콧구멍의 아내였던 것이다. 광부들과 시민들은 검은 콧구멍의 아내의 용기에 환호성을 질렀다. 늙은 광부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검은 콧구멍의 아내가 시청 안 회의실로 뛰어 들어가 처음 본 것은 당연히 그의 남편 검은 콧구멍이 여비서의 젖통을 깨물고 있는 광경이었다. 검은 콧구멍의 아내의 눈동자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체념과 함께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자기 확신으로 어지럽게 흔들거렸다. 검은 콧구멍의 아내는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알았으므로 곡괭이를 든 채 울부짖고 있는 도살장의 신부에게로 가서 그 곡괭이 자루를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신부는 여자가 자신을 해치려는 줄 알고 곡괭이 자루를 더 단단히 붙잡았다. 당연히 둘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말고기 같은 자식, 내 손으로 기필코 죽일 테다." 여자의 욕설에 신부는 더 필사적으로 곡괭이 자루를 부여잡았다. 욕설이 오가고 여자는 신부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도살장 신부는 여자의 복부를 의족으로 서너 차례 힘껏 내질렀다. 그러나 여자는 끄덕하지 않았다. 그의 의족 어디쯤인가의 나사가 풀렸는지 의족이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의족이 무릎을 꿇자 그의 성한 다리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젠 검은 콧구멍의 아내가 그 밑에 깔리는 형국이 되었다. 시장은 이 급작스런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도저히 자신의 머리로는 알 수가 없어 그때까지 자신의 생각에 잠겨있는 약사 스컹크를 바라보았다. 이쯤에서 약사 스컹크는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바지를 벗고 팬티를 내려깠다. 그리고 항문에 붙여 놓았던 파스를 떼어 내려 하였다. 그러나 파스는 의외로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 사태를 관망한 약사 스컹크의 또 다른 계략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시장은 약사 스컹크를 다그쳤고 약사 스컹크는 시장을 향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광부들을 탄광촌에서 몰아내고 그곳에 도박장을 세우면 그곳의 지분을 자신에게도 3할 정도 배정해 줄 것을 제안했다. 시장은 약사 스컹크의 그 겁없는 제안에 놀라고 말았다. 엄밀히 말하면 어떻게 그런 낯뜨거운 말을 사람들 앞에서 쉽게 할 수가 있는가 하는데서 오는 놀라움이었다. 그 말을 들은 검은 콧구멍은 불현듯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제 정신으로 돌아온 그가 처음으로 본 것은 무릎을 바닥에 꿇고 곡괭이 자루로 그의 아내를 내리누르고 있는 도살장의 신부였다. 검은 콧구멍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가 도살장 신부에게 달려가려는 순간 그만 반쯤 벗겨진 자신의 바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욕망의 늪에서 제 정신으로 빠져 나온 여비서도 이 모든 사태가 자신으로 인하여 벌어진 줄 알고 시청 앞 광장이 보이는 창문 쪽으로 뛰어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사실 그 비명은 광장에 모인 험악한 광부들을 보고 지른 것이었는데, 실의에 빠진 늙은 광부에게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웃옷이 찢어지고 흰 젖통이 드러난 여자가 회의실 창문에 기대어 광장의 그들에게 간절하게 구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늙은 광부는 자신의 감정을 능청스럽게 사람들 앞에서 속일 심리적 여유가 없었으므로 곧 바로 신랄하게 검은 콧구멍을 비방했다. "검은 콧구멍이 여색을 탐한다는 것은 우리 탄광촌이 다 아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의 예언을 믿고 그를 대표로 시청 안에 보낸 건 그에게 동료적 입장에서 기회를 한번 주자는 것이었는데 그는 저곳에서도 기어이 본성을 숨기지 못하고 여자를 범했다. 그가 우리들의 신의를 더럽혔다. 이젠 정말 내가 저곳에 들어가야 할 때다." 그의 말은 이번 사태 이전부터 하루에 꼭 한번씩 준비하고 외워두었던 것처럼 일사천리로 그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그 말과 동시에 늙은 광부는 시청 안으로 쏜살같이 뛰어들어갔다. 이젠 그 누구도 늙은 광부를 어이없게 만들지 않았다.

시장은 선택을 해야 했다. 스컹크에게 3할을 약속하고 이 사태를 진압하느냐 아니면 이대로 될 대로 되는 운명에 맡길 것인가. 교활한 약사 스컹크는 모든 정치적 거래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시장이 선뜻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조금은 불안했다. '도대체 시장은 그깟 3할 정도의 지분을 왜 아끼는 것일까?' 그러나 시장의 머릿속에서는 피눈물을 흘리는 주판알들이 하나 빼고 하나 더해지고 있었다. 도살장의 신부에게 이전에 미리 2할을 약속했었는데 약사 스컹크에게 3할을 주면 나머지는 5할. 또 통장들에게 각각 몇 할의 지분이 돌아가고 그럼 자신에게 남는 것은 몇 할이란 말인가? 그럼 도살장의 신부의 지분을 더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시장은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손바닥에 땀이 배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두 손을 자신의 볼록 튀어나온 배에 쓰윽 문질렀다. 그 행동은 마치 모든 것은 이미 내 속에 결정되어 있다는 자만심의 의기양양한 표현방법으로 보였다. 초조히 그 행동을 지켜보던 도살장의 신부는 어떻게든 시장의 말을 막기 위하여 일어서려고 하였으나 검은 콧구멍의 아내는 신부를 붙들고 놓칠 않았다. 시장이 다시 한번 두 손바닥을 배에 쓱 문지르고 약사 스컹크의 제안을 승낙할 자세를 보이자 도살장의 신부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다시 한번 일어서려고 하였다. 그러나 검은 콧구멍의 아내가 도살장 신부의 머리채를 붙들고 끝까지 놓아주질 않자 다급한 그는 곡괭이를 그녀의 머리위로 높이 치켜들곤 위협적으로 두 눈을 부라려 보았다. 바로 그 순간 신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랜 직업적 관성이 시키는 대로, 치켜 든 곡괭이를 정확하게 여자의 정수리에 찍어 놓았다. 그것은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여자는 도끼를 얻어맞은 황소처럼 가늘게 신음을 토하곤 몇 번 피식 피식 머리통에서 붉은 피를 뿜어대더니 맥없이 사지를 뻗어 버렸다. 순간 그것을 지켜 본 약사 스컹크도 시장도 바람에 떠밀린 듯 경악하며 도살장 신부의 주변에서 두 세 발짝씩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시장은 내심 이런 사태를 노렸다는 듯 약사 스컹크에게 그것만은 안 된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 말에 어이가 없는 건 약사 스컹크가 아니라 도살장의 신부였다. 도살장의 신부는 자신이 시장의 얄팍한 술수에 말려들었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약사 스컹크는 시장의 더러운 물욕에 속이 뒤틀릴 만큼 화가 났다. "그럼 시장 혼자 다 먹겠다는 것인가?" 약사 스컹크는 자신의 엉덩이에 붙은 파스를 떼어내어 시장에게 본때를 보여 주어야겠다고 결심하곤 얼른 파스를 떼어 내었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믿었던 방귀는 중요한 순간에 그를 배신했다. 방귀를 뀌지 못하는 약사 스컹크는 이제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그는 단지 발가벗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약사일 뿐이었다. 검은 콧구멍은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분노로 바지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무릎걸음으로 그의 아내에게로 기어갔다. 그러나 검은 콧구멍은 막상 사지를 뻗고 축 늘어진 자신의 아내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자 의외로 자신의 눈앞에서 검은 먹구름이 걷히고 밝은 태양 아래 이웃집 처녀들과 자신이 통렬한 해방감에 휩싸여 얼싸안고 춤을 추는 환영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슬픔에 젖어 있는 그에게 말없이 다가와 가슴의 털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던 아내의 손길이 떠오르자 검은 콧구멍은 시뻘건 화인에 데인 망아지처럼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것은 마치 도끼를 십여 차례 맞고도 죽지 않던 황소가 내지르던 마지막 울음과도 같았다. 도살장 신부도 지금 막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완전히 정신이 나가 팔을 허공에 십자로 크게 휘둘러대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을 찾으며 울부짖었다. 그때 검은 콧구멍은 닭똥 만한 눈물을 툭툭 떨어뜨리며 그의 아내를 내리찧었던 피묻은 곡괭이 자루를 신부의 머리 위로 높이 쳐들었다.

그 순간 젊은 광부들이 회의실로 뛰어 들어 왔다. 늙은 광부는 회의실로 올라오는 마지막 계단에 그만 얼굴을 묻고 흐느끼고 있었다. 시청계단을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속력을 내어 뛰어 올랐으나, 유달리 다혈질적인 젊은 광부들이 사태의 추이를 참지 못하고 늙은 광부를 제치고 앞질러 회의실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도살된 짐승처럼 피투성이로 널부러진 아내 옆에서 곡괭이를 높이 치켜든 채 울부짖고 있는 검은 콧구멍을 본 젊은 광부들은 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유혈 혁명이 시작된 것을 알곤 각자 무기가 될 만 한 집기를 집어들었다. 그들이 볼 땐 검은 콧구멍과 그의 아내는 홀연 단신으로 시청 안 모리배들과 영웅적으로 싸웠던 것이었다. 순간 숭고하고도 깊은 존경심이 젊은 광부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리곤 아슬아슬한 긴 정적이 흘렀다. 약사 스컹크도 시장도 검은 콧구멍도 한 구석에서 이 모든 사태에 반쯤 미쳐버린 여비서도, 이젠 완전히 곯아떨어진 각 구역의 어리석은 통장들만 빼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어 보지 못하고 사태가 이렇게 험악하게 변해 버렸나를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모두 다 이쯤에서 서로들 한 발짝씩 물러 서 주길 바랬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 정적이 또 다시 흘렀다. 그런데 약사 스컹크의 방귀가 그 중요한 순간에 항문의 괄약근을 힘차게 밀곤 밖으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사전에 약사 스컹크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광부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막장에 들어 갈 때 착용하는 마스크를 동시에 아주 빈틈없이 착용하였다. 그 틈에 죽어 나는 것은 시장과 도살장의 신부와 각 구역의 어리석은 통장들과 여비서뿐이었다. 시장은 그 매운 최루가스의 방귀에 코를 쥐어 잡고 분노에 떨며 약사 스컹크의 얼굴을 한 대 쥐어 갈겼다. 약사 스컹크는 바닥에 쓰러지고 나서도 계속하여 방귀를 뀌어 대었다. 그 동안 참았던 방귀에 약사 스컹크도 어떻게 자신을 통제 할 수 없었으므로 시장에게 맞으면서도 그는 자신에게 속상하여 울고 말았다. 시장은 그의 구두코로 사정없이 약사 스컹크의 배를 내질렀다. 광부들은 그런 시장의 행동을 저지하기보다는 더 과격하게 보이도록 시장을 쓰러진 약사 스컹크의 허리춤에 앉혔다. 백 삼십 킬로의 육중한 무게가 약사 스컹크의 허리를 분질러 놓는 듯 했으나 약사 스컹크는 그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검은 콧구멍은 아내를 잃은 치유할 수 없는 아픔과 분노로 울부짖으며 아직도 곡괭이를 신부의 머리 위에서 높이 치켜들고만 있었다. 도살장의 신부는 이제 그만 자신에게 허락된 고통의 잔을 마시고 싶었다. 신부는 자신의 의족과 성한 다리를 한곳으로 모아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도 그는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이 일을 기적적으로 해냈고 처음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사람의 어색함으로 얼굴을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깊이 묻었다. 순간 검은 콧구멍의 곡괭이 자루가 더 이상은 힘에 부쳐서라도 높이 쳐들고 있을 수 없다는 듯 신부의 머리통에 내리쳐졌다. 이 단 한번의 내리침으로 해서 도살장의 신부는 죽지 않았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피를 본 광부들이 자신들도 어쩌지 못할 광기에 휩싸여 어리석은 통장들을 회의실 창문 밖으로 집어던지는 것을 보고 말았다. 어리석은 통장들은 창문 밖으로 떨어지면서도 함부로 갠 모포처럼 최대한 몸의 사지를 웅크린 채 허공을 가르며 광장에 모여 있는 광부들과 군중 속으로 떨어졌다. 군중들은 이 모든 사태를 혁명으로 규정하고 혁명의 편에 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과격하게 몰아갔다. 그들은 상점과 거리의 차들을 불태우고 전복시켰다. 그러나 그러한 광기 속에서도 자신들의 상점과 차들은 분명하게 구별하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그들에게 혁명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광부들의 오랜 욕설을 마구 지껄여댔다. "이렇게 깊이 숨어 있으려면 검지나 말지." 도살장의 신부는 자신의 쪼개진 정수리에서 솟구쳐 오르며 이마를 적시고 자신의 눈 속으로 흘러 들어가 검은 동공을 안개 속으로 가두는 피의 온기를 섬뜩하게 느꼈다. 신부는 이젠 모든 것이 아득했다. 으깨어진 정수리의 고통도, 고통을 주었던 곡괭이 자루도, 자루를 들고 있는 검은 콧구멍도, 콧구멍의 아내도, 시청 앞 광장도, 그곳으로 오기까지의 골목도, 도살장에서의 마지막 기도도, 그 날 자신에게 찾아왔던 피 흘리는 석탄도. 이제 검은 콧구멍은 시장의 볼록 튀어나온 배도 사정없이 곡괭이로 찢어발겨 버렸다. 그러나 신기하게 시장의 찢어진 배에서는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시장도 잠시 자신의 찢어진 배를 넋 나간 듯 쳐다보다가 꿈속에서 버린 피 흘리는 석탄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사태가 이렇게 나빠지진 않을 것이라는 걸 생각해 보았지만, 그는 그 어떤 꿈도 다시는 꿀 수 없게 되었다. 시장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갈라 찢어진 뱃속으로 광부들이 곡괭이자루를 들고 사라져 버리는 환영을 보았다. 검은 콧구멍의 광부는 잠시 앙탈 부리는 여비서의 젖통을 한 입 덥석 깨물고는 곡괭이 대신 여비서를 어깨에 을러메고 사라져 버렸다. 시장은 차라리 광부들과 공평한 계약을 했더라면 애초에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신의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 떠오르자 자신은 정말 예민하고 직감이 빠른 위대한 지도자라는 터무니없는 자만심에 들떠 죽은 뒤에도 죽음이 찾아온 것도 잠시 잊었다. 늙은 광부는 이 모든 사태가 진정 된 뒤에야 회의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는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발로 한번씩 걷어차면서 - 검은 콧구멍 아내는 더 세게 걷어차였다 - 혹시 살아있을지 모르는 시체를 찾아보았다. 그것은 그가 해야할 일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의 표현이었는데 그런 그 자신이 너무도 초라하게 생각되어 창문 쪽으로 다가가 자신에게 등을 돌린 텅 빈 광장을 바라보며 늙은 한 마리 타조처럼 울부짖었다.

그때 마을의 종려나무가지 위에 걸려있던 태양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 다.

* 이른 아침 검은 석탄을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그 마을의 석탄공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트럭들이 지나가는 길엔 한쪽 눈을 소의 뿔에 찔린 도살공이 사는 도살장이 있었고 앉은뱅이 약사가 자신에게 처방전을 쓰고 자신에게 약을 먹이는 약방이 있었고 항상 청렴결백을 외쳐대던 그러나 비만으로 끝내 각료회의실에서 쓰러져 죽은 시장의 집이 있었다. 석탄 차들은 그들이 사는 곳에 검은 석탄가루를 날리며 태양보다 더 높이 솟아있는 공장의 굴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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