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신화의 죽음과 소설의 탄생
성 명 : 이선영

-'사람의 아들'과 '에리직톤의 초상'을 중심으로 -

1. 신이 없는 세상에서 신을 이야기하기

‘소설은 神에게서 버림당한 세계의 서사시’라는 루카치의 정의에서 우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소설의 두 가지 속성을 유추해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세속성과 신성성이다.

근대는 과학의 발달과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되었으며, 소설은 이러한 근대성의 산물이므로 세속성은 소설의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의 세속화가 곧 소설의 무종교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루카치는 소설을 ‘선험적 고향 상실성의 표현’이라고도 했거니와, 상실감은 욕망의 가장 강한 동력이며 신에 대한 물음은 인간 존재의 한계상황이 필연적으로 제기하는 물음이기 때문이다. 세속성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듯한 소설의 이면에 신성성이 자리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신이 부재하는 세계 속에서는 인간 스스로 자기 존재의 의미를 밝혀내야 한다.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종교적 확신이 옅어지면 옅어질수록 신에 대한 인간의 물음은 더욱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80년을 전후하여 발표된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1979)과 이승우의 ‘에리직톤의 초상’(1981)은 소설이 제기해야 하는 이러한 물음을 파고든 작품이다. 애초에는 중편이었던 이 두 작품은 80년대를 관통하며 모두 장편으로 거듭나는데, 이로써 ‘사람의 아들’(1987)과 ‘에리직톤의 초상’(1990)은 신에 대한 물음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보기 드문 작품으로 한국 소설사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된다. 주목할 것은, 신성에 대한 이들의 탐구가 사회학적 상상력이 압도적 주류를 이루었던 1980년대에 행해졌다는 사실이다.

다른 작가들이 역사 속의 인간을 고민하고 있을 때, 이들은 왜 신에게로 관심을 돌렸을까. 이는 비단 인간이 육체와 영혼의 복합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소설이 초월적 지평을 이야기하는 것을 격동의 한국사가 너무 오랫동안 막아왔기 때문에,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새삼스레 신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긴 했지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당시 한국적 상황이 그만큼 우리를 절망에 빠뜨렸기 때문이 아닐까. 더 이상 인간과, 인간이 만든 사회에 희망을 걸 수 없다는 비극적 인식이, 인간의 시선을 그들 스스로가 오래전에 폐기해버린 신에게로 돌리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면, 신에게서도 전망을 얻을 수 없다. 신이야말로 인간을 부조리하게 창조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잘못은 신에게 있는가. 신에게 죄를 묻고 신을 죽이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는가. 그러나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시도되었고, 지상낙원의 신화는 그 앙상한 실체를 벌써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신에게 무조건 회귀할 수도 없다. 이 세계에서 신은 언제나 침묵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실존적 딜레마로부터 ‘사람의 아들’과 ‘에리직톤의 초상’은 출발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아들’은 새로운 신을 창조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에 착수하게 되고, 그 절망의 끝에서 ‘에리직톤의 초상’은 다시 신과의 화해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것의 창조란 어떠한 의미로든지 낡은 것의 파괴를 전제하며, 화해 역시 과거로의 단순한 복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사람의 아들’과 ‘에리직톤의 초상’의 선결 과제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신화를 해체하는 작업이 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해체할 것이 신성 그 자체가 아니라 ‘신화화’된 그것이라는 점이다. 신화화된 신성이라는 말 속에는 그것이 거짓 신성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거니와 신화란 언제나 권력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이들이 왜 하필 80년대에 신화의 해체를 시도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 ‘사람의 아들’, 신화를 죽이고 신화가 되기

신이되 또한 인간이었던 예수라는 존재의 특수성은 소설적 충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종교가 예수의 부활에 초점을 맞춘다면, 소설은 부활한 예수가 아니라 인간으로 죽어간 예수에 관심을 갖는다. 의심과 회의야말로 소설의 정신이며, 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소설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화적 충동이 예수의 인성을 제거하는 동안 소설적 충동은 예수에게서 신의 면모를 제거하거나 약화시켜 왔다. 엔도 슈사쿠의 ‘예수의 생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의 제2복음‘ 등이 그러한 충동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이들과 전혀 다른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소설은 예수에게서 신성이 아니라 오히려 인성을 제거한다. 그 결과 예수는 소설적 인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다. ‘사람의 아들’에 그려진 예수에게서 우리가 어떠한 감동도 느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독선적인 야훼의 대리인일 뿐이므로 그에게는 그 어떤 인간적인 회의도, 불안도 없다. 당연히 인간의 고통에 대한 연민도 없다. 말없이 대심문관의 비판을 듣고 있다가 그의 핏기 없는 입술에 조용히 입을 맞추어주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예수와 달리 ‘사람의 아들’의 예수는 아하스 페르츠의 비판에 조목조목 반박한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예수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대심문관까지도 불쌍히 여기지만 ‘사람의 아들’의 예수는, 아하스 페르츠의 비판으로부터 육체를 가진 인간의 고통을 읽어내기는커녕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하스 페르츠를 사탄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신을 신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예수에게서 인성을 제거했을 뿐이지만 그로 인해 더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예수의 신성이다. 물론 그에게는 이미 인성도 없다. 예수의 인성을 강조한 소설들은 신을 포기하는 대신 예수라는 인간을 얻었지만 ‘사람의 아들’은 인간으로서의 예수도, 신으로서의 예수도 설득력 없이 그림으로써 예수라는 존재 자체를 폐기해버린다.

‘사람의 아들’이 이렇게 예수를 부정한 이유는 아하스 페르츠라는 인물을 창조해 내기 위해서이다. 아하스 페르츠는 그 실존 여부조차 베일에 싸인 그야말로 신화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작가가 소설적 인물로 그를 불러낸 까닭은 그의 신화가 신태혁이 말하는 이른바 ‘실패한 자의 신화’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전설에 의하면 아하스 페르츠는 이스라엘의 구두장이였는데,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도중에 그의 집 문 앞에서 쓰러져 잠깐 쉬게 해 달라고 청하자, 그것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 결과 그는 예수 재림 때까지 죽지 못하고 방황해야만 하는 저주를 받는다. 그러나 소설의 정신은 이러한 신화적 세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소설은 신화에서 분리된 장르일 뿐 아니라, 신화를 해체하는 작업에 복무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아들’은, 기존의 신화는 악의에 찬 기독교도들이 터무니없이 왜곡해 만든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그를 예수보다 훨씬 인간적이며 설득력 있는 인물로 재창조하고 있다. 신태혁이 궁극에 이르러 에리직톤과 예수의 구분을 무화시켜 버렸듯이 민요섭은 아하스 페르츠라는 악마적 인물을 ‘사람의 아들’로 부활시킨 것이다. 이제 ‘사람의 아들’은 예수를 뜻하는 관습적 용어에 머물지 않는다. 소설의 전복적 상상력은 덕지덕지 들러붙은 상투적 사고의 때를 벗기고 언어의 말랑말랑한 시원을 회복시킨다.

그렇다면 예수가 아닌 아하스 페르츠가 ‘사람의 아들’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그가 인간성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가 하찮게 여긴 기적과 권세와 빵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었으며, 그것들을 얻기 위해 신과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뿐인가. ‘지상의 권세와 쾌락은 순간이지만 천상의 권능과 복락은 영원하다’는 예수의 말에 반박해 그는 ‘모든 것은 순간이고 영원한 행복은 영원한 불행처럼 존재하지 않는다’며 땅 위의 영화와 쾌락을 긍정한다. ‘육욕의 화신’에 가까운 사라와 문장로 부인이 추잡하거나 불결하게 묘사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에 의하면, 비열한 것은 오히려 사랑만으로 아내를 지킬 자신이 없어 간음죄를 고안해낸 남자들이며, 신의 이름을 빌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억압한 율법이다.

그럼에도, 그가 ‘사람의 아들’이라는 민요섭과 조동팔의 주장에 독자들이 얼른 수긍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에게 기적을 행할 권능이 없어서가 아니다. 신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의 아들이라는 것이 그의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준거라는 것은 처음부터 동의한 바가 아닌가. 문제는 그의 인간성 옹호가 불구의 것이라는 데 있다. 민중을 위한 권력 창출을 외치면서도 그는 정작 민중의 권력 창출을 도모하지는 않는다. 민중 대신 신의 아들 예수에게 권력 획득의 역할을 맡기려고 하다가, 그게 안 되자 그를 이 세상에서 몰아내는 데 힘을 쏟는 것이다. 논리로 보면 그는 당시 열심당원들과 별 차이가 없지만 오히려 그는 종교가들과 결탁한다. 유대교에 대한 비판으로 하나님을 떠났던 그가 유대교를 비판하는 예수를 죽이기 위해 유대교 제관들과 결탁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모순을 피하기 위해 ‘사람의 아들’에서는 예수가 당시의 부패한 종교와 권력을 비판하는 모습은 생략하고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모순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그는 예수의 독선을 비판하면서 인간의 완전한 자유를 주장하고 있지만, ‘위대한 영’의 부름까지 받은 그가 한 일이라고는 결국 예수를 비판한 일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아하스 페르츠가 철저하게 관념적이고 비실천적인 지성이라는 것은 그가 현실의 비참을 목도하고 난 뒤에도 민요섭이나 조동팔처럼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고 새로운 신을 찾아 방랑을 떠났다는 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물론 10여년에 걸친 그의 방황은 산고(産苦)와도 같은 것이어서 그는 마침내 위대한 영을 만나고 오랜 의심과 회의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소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대한 영을 만나기 전이나 만나고 난 뒤나 아하스 페르츠의 문제의식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쿠아란타리아서를 창작한 인물이 아하스 페르츠의 분신에 다름 아닌 민요섭과 조동팔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이중의 액자소설적 구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액자와 그림이 대화적 관계를 취하지 않고 상호 모방만 함으로써 이야기는 이렇게 단순화되고 인물은 단일화된다. 결국 아하스 페르츠가 모방하고 있는 위대한 영이란 아하스 페르츠의 비판적 지성이 낳은 또 하나의 관념에 불과했던 것, 맴을 돌고 돌아 이들은 마침내 자신들이 출발했던 바로 그 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의 정신만이 있을 뿐 새로운 긍정의 전망이 없다. 위대한 영은 혼자서는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야훼의 반쪽으로만 그려질 뿐이고 그를 대리하는 아하스 페르츠 역시 예수의 대립항으로만 기능한다. 그들은 자율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부정’으로만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철저히 종속적인 존재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신성에 대한 도전에 집착함으로써 아하스 페르츠는 오히려 인간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다. 예수를 제거하기 원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세속의 권력자였던 것이다. 예수를 죽임으로써 그는 역설적으로 권력에 힘을 실어준다. 신에 대한 도전을 ‘이 시대의 삶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위한 수단’(이남호, ‘신의 은총과 인간의 정의’, 이문열, ‘사람의 아들’, 민음사, 1990, 285쪽)으로 읽으려던 독자들은 혼란에 빠진다. 신이란 권력의 다른 이름이고 신에 대한 저항은 민중에 대한 사랑의 발로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에리직톤의 초상’처럼 신화를 권력의 산물로 읽고 있는 듯하면서도 궁극에 이르러 현실 권력과 신을 분리, 그 비난의 화살을 권력이 아니라 신에게 쏘고 있다. 아하스 페르츠에 비해 조동팔과 민요섭은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70∼80년대의 한국 사회와 제도화된 기독교 모두에 실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신화 뒤에는 언제나 부패한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이 세계의 잘못을 모두 신의 탓으로 밀어놓는 것처럼 보인다.

권력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을 생략함으로써 ‘사람의 아들’은 육체적 쾌락의 긍정이 갖는 의의도 상실하고 만다.

“먼저 저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하고 이 땅의 왕홀(王笏)과 권세부터 손에 넣읍시다. 말씀을 전하는 일은 그 다음이라도 늦지 않소. 아니, 그래야만 당신은 보다 쉽고 힘있게 하늘에 계신 그분의 말씀을 저들에게 전할 수 있고 또 보다 확실하게 그 실천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오. 거기다가 어디 그뿐이겠소 당신이 타고난 사람의 몸은 이 세상의 영화를 흠뻑 누릴 수 있을 것이며, 그 마음도 남을 다스리고 부리는 즐거움을 실컷 맛볼 수 있을 것이오.”(1: 194)

아하스 페르츠의 이러한 주장은 예수의 이상주의에 반발한 현실주의로서 분명 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검(劍)이 없었던 판관의 시대보다는 검을 가졌던 열왕의 시대에 사람들은 더 말씀에 충실하였으며, 영화와 쾌락은 육신을 가진 자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그의 주장은 부정한 권력을 옹호하는 논리로도 사용될 수 있는 소지가 농후하다. 뿐만 아니라 ‘남을 다스리고 부리는 즐거움’의 반대편에는 남에게 다스림과 부림을 받는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하스 페르츠는 간과하고 있다. 육체의 쾌락이 긍정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소수 지배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다수 민중의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지배와 복종의 신화’를 낳을 뿐이다.

‘사람의 아들’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아하스 페르츠 이야기가 궁극에 이르러 또 하나의 신화로 전락하고 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훼와 예수에 대한 부정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인간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고민은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아하스 페르츠는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되어 ‘영원히’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기로 한다. 아하스 페르츠가 위대한 영을 만나면서부터 ‘사람의 아들’에서는 이미 신과 인간 사이의 ‘소설적 대결’은 사라지고 두 신의 아들이 벌이는 ‘신화적 대결’만이 남게 되지만(서영채, ‘소설의 열림, 이야기의 닫힘’, 류철균 編, ‘이문열론’, 살림, 1993, 184쪽 참고), 그가 육체의 한계에서마저 자유로워지면서 ‘사람의 아들’은 결국 신성의 ‘영원한 대립’이라는 비극적 전망만을 우리에게 남겨놓는 것이다.

이렇듯 대화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예수와 아하스 페르츠뿐만이 아니다. ‘사람의 아들’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서로를 거울처럼 모방하거나 적대적으로 배척할 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모하지 않는다. 단일한 ‘욕망의 삼각형’에 갇혀버렸기 때문일까, 소설의 인물들은 너무 단성적이다. 시공간의 거리에 짓눌렸기 때문일까, 액자와 그림은 반복될 뿐 변증법적 교차를 꾀하며 이야기를 상승시키지 않는다. 소설의 구조적 결함은 결말을 파국으로 이끌게 마련이다. 민요섭의 허무한 회귀와 조동팔의 비극적인 자살은, 그러므로 예정된 것이었다. 신화를 해체한 자리에 소설이 탄생하지 못하고 또 다른 신화가 들어섰듯이 신을 죽인 그곳에서 이제 인간의 죽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3. ‘에리직톤의 초상’1, ‘안정과 질서의 신화’와 에리직톤의 죽음

모든 죽음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폭력이 수반된다. 물론 탄생에도 폭력이 따른다. 탄생이야말로 죽음을 그 자양분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원은 ‘에리직톤의 초상’의 형석에 따르면 구원 역시 폭력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예수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를 희생했기 때문이지만 이 희생 역시 스스로에게 행사한 폭력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폭력과 구별되지 않는 희생. 형석은 이 논리를 확장하여 자신의 교황 암살 시도도 구원을 성취하기 위한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죽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그의 명제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목적하는 구원이란 자기 자신의 구원일 뿐이다. 그것에만 전 존재를 다 걸어도 끝내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그때까지 그의 삶은 함부로 짓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형석은 성년이 된 후에도 그 기억을 떨쳐낼 수 없는 암울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말한다. 부모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자라 스스로를 “사육되는 한 마리의 가축”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손목을 칼로 긋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견 자살 시도로 비칠 수 있는 이 사건에 대해 그는 다른 설명을 달아놓고 있다. 그가 손목을 그은 것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도 인간의 생명을 보장해주는 신성한 피가 흐르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이 자학적인 몸짓이 실상은 생의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그의 증언은 그의, 이후의 모든 행동에 대한 유효한 해석의 틀이 된다.

자신의 내부에도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신의 인간됨을 믿을 수 있었던 처절한 유년의 기억은, 형석과 세계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을 형성한다. 생의 본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는 세계와 화해할 수 없다. 피를 통해 자기 역시 남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자의식을 확립한 후 그가 느낀 것은 희열이 아니라 분노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를 선언한다고 해서 세계가 돌연 그를 존중하지는 않는다.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잘못은 아니다. 그도 엄연히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이 세계의 질서가 잘못된 것인가. 그러나 왜소한 한 개인이 이 거대한 세계의 질서를 어떻게 돌려놓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자존감을 회복하지 못한 그는 성년이 된 후에도 여전히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세계와 대립한다. 모두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만 같은 느낌에 시달리게 되면서 그의 유학 생활은 파국으로 치닫고 급기야 그는 약혼자인 혜령과도 결별한다. 그녀가 자신의 선생이었다는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상에 존재하는 수직적 질서에도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가 수직적 질서의 정점에 서 있는 신을 신앙할 수는 없는 법.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던 형석은 ‘사람의 아들’에서 조동팔이 민요섭을 만나 생의 경로를 완전히 변경하듯이, 델브뤼케를 만나 혼자서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수직적 질서의 파괴를 드디어 시도하게 된다.

민요섭과 조동팔이 수평 지향적이면서 동시에 수직 지향적인 것과는 달리, 델브뤼케와 형석은 철저하게 수평 지향적이다. 신을 떠난 자의 허무에 갇혀버렸다는 점에서 그들은 현대인의 초상이지만, 이 세계가 인간이 만들어낸 거짓 초월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쯤은 눈치 채고 있다. 종교가 대표적인 예이다. 종교는 신이 떠난 자리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신의 대리자를 내세우고, 대리자는 신이 아니면서 신의 이름으로 인간 위에 군림하며, 인간 존재의 허무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그의 발아래 엎드린다. 그러나 수직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신과 인간의 관계일 때뿐이다. 아니, 오히려 진짜 신은 인간이 되어 내려왔다. 그러므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응당 수평적이어야 하지만 실제로 인간은 가족 안에서마저 수직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렇게 수평적이어야 하는 관계가 부당하게 수직을 강요할 때, 인간은 굴욕감을 느낀다. 신도 아닌 인간이 자신보다 높은 곳에 있다면, 그 자신은 인간보다 낮은 짐승이나 벌레의 위치에 서 있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형석이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상실하고 실존의 위기를 겪는 것도 이런 부당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수직 관계를 해체해야만 한다. 자신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든가, 아니면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을 아래로 끌어내리든가. 추크슈피체 등반 후 전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형석은 델브뤼케의 유혹에 이끌려 후자를 택한다. 델브뤼케가 교황을 구체적인 표적으로 제시하고 형석이 그 표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활력을 맛본다.

“표적이, 있었다. 내가 쓰러뜨려야 할 표적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 나의 삶은 델브뤼케 못지않게 활기에 넘쳤고, 방아쇠를 당기는 나의 손끝은 늘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표적은, 하여 내가 쓰러뜨려야 할 목표물이면서 동시에 나를 지탱해 주는 자극이었다. 내가 쓰러뜨려야 할 표적만이 나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은 필시 하나의 역설일 것이다. 그러나 역설만이 진리를 감추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역설이 아니다. 나에게는 표적이 필요하다. 그 표적은 막강할수록, 권위적일수록, 도달이 불가능할수록, 그리고 상징적일수록, 즉 비현실적일수록 효과적이다.”

표적이 “막강할수록, 권위적일수록, 도달이 불가능할수록, 그리고 상징적일수록, 즉 비현실적일수록” 효과적인 이유는, 그래야만 그것이 삶의 활력을 더 강하게, 그리고 더 오래 유지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달성될 표적에 대해서는 욕망도 강하게 일어나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달성하고 난 뒤 또다시 다른 표적을 찾아 헤매야 된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표적이 너무 막강해도 문제는 있다. 영원히 그 표적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그럴 때 주체는 또 극심한 열패감에 빠져 자신의 존재의의를 상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황 암살에 실패하고 난 뒤 형석이 다시 무력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것이다. 삶의 의미를 외부의 표적에 의지해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필연적으로 이러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르네 지라르는 영원히 반복되는 이 폭력의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폭력을 일거에 제거할 수 있는 더 큰 폭력, 더 큰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르네 지라르, 김진식·박무호 역, ‘폭력과 성스러움‘, 민음사, 1997. 참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의 자기희생이야말로 다른 모든 폭력을 잠재울 수 있는 ‘초월적 폭력’이기 때문이다. 교황도 이런 신의 자리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신은 유일자이지만 교황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델브뤼케와 형석이 비록 교황 그 자체가 아니라 교황이라는 권위에 도전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 폭력의 구조를 무너뜨릴 수 없었음은 자명하다. 교황 한 명을 죽인다고 해서 교황이나 가톨릭 교회 체제가 붕괴되지는 않는 것이다.

신화화된 종교가 하나의 폭력이라면 델브뤼케와 형석의 교황 암살 시도 역시 폭력이다. 그러나 그들이 휘두른 폭력은 종교의 권위에 비해 너무 왜소한 것이었다. 그들이 두 번째로 로마로 갔을 때, 그곳의 사람들, 풍경들, 교황의 행렬, 그 행렬을 보고 형석이 느끼는 감정 등이 모두 과거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은, 이미 한 번의 교황 암살 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의 구조가 전혀 바뀌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실제로 요한 바로오 2세를 저격했던 아그자와 마찬가지로 델브뤼케 역시 교황 저격에 실패함으로써 이러한 구조는 더욱 공고해진다. 결국 ‘인간사의 수직적 파괴’는 실패하고, 그를 통해 이루려던 ‘개인적 구원’ 역시 좌절당한다. 중개자를 상실한 자가 대상을 욕망할 수는 없는 법, ‘사람의 아들’에서 민요섭의 회심 앞에 조동팔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듯이, 델브뤼케의 실패를 목격한 형석 역시 자기 파괴를 감행할 수밖에 없게 된다. 몇몇 평자들은 최형석의 이런 죽음을 ‘악령’의 키릴로프와 연결시키고 있지만, 그가 신의 죽음을 선포하고 인간의 ‘신 됨’을 드러내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도스토예프스키적 세계의 인물들과는 달리 그에게는 처음부터 인간의 존재 의의가 신으로부터 부여된다는 식의 사고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떤 외부의 힘이―그것이 은총의 형태로든 신탁의 양식으로든, 아니면 계시의 길을 통해서이든―침투해 들어온다는 것을, 그리하여 인간이 그 지배하에 놓인다고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으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까지 밝혀놓고 있다. 그에게는 이미 부정할 신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교황 암살은 신에 대한 도전이 아니다. 그는 세계 내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발견하기 원했을 뿐이며 이를 위해 종교로 대표되는 인간 사회의 수직적 질서에 도전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그러한 도전이 실패한 데 따른 절망의 몸짓이며, 신에게서도 인간에게서도 존재 의의를 찾지 못한 자의 비극적인 자기파괴일 뿐인 것이다.

이로써 ‘에리직톤의 초상’은, ‘삶은 총을 똑바로 쏘는 것이다’라고 외치면서도, 그들 모두가 실제로는 표적을 제대로 겨누지 못했음을, 그리고 그 표적이 적절하지도 않았음을, 나아가 개인이 도전해서 무너뜨리기에는 현실의 지배구조가 너무 공고하다는 것을 암울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실의 지배구조가 이토록 공고한 까닭은, 이들의 신화가 깨어지기를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지 않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신이 사라진 이 시대야말로 보다 강력한 신화가 간절히 요구되는 때일 것이므로.


4. ‘에리직톤의 초상’2, ‘자유와 해방의 신화’와 예수의 부활

신에 대한 도전과 신의 응징이라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에리직톤 신화는 아하스 페르츠 신화와 동일선상에 있다. 에리직톤은 신들을 멸시하는 불경한 사람으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다. 그는 시어리어즈 여신이 사랑하는 신성한 나무를 도끼질해 쓰러뜨리고, 여신은 그 형벌로 에리직톤에게 영원한 굶주림을 내린다. 온 재산을 다 팔아 음식을 사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자, 그는 결국 딸까지 팔아먹고 마침내는 자기 자신의 팔다리마저 뜯어먹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정상훈은 이 신화를 ‘신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폭력’으로 읽는다. 신에 대항한 인간의 폭력과 그러한 인간을 응징하는 신의 폭력. 인간이 낙원을 상실하고 서로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된 것도 이러한 수직적 폭력의 결과다. 따라서 그는 수평적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수직적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을 거론하지 않는 모든 휴머니즘은 허무주의라는 기형의 자식밖에 낳지 못할 것이며, 절망이라는 기항지가 그들의 종국일 것이기 때문이다. 민요섭과 조동팔의 행로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신태혁은 에리직톤의 도전을 신성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신성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잘못된 구조에 대한 도전으로 읽는다. 그러므로 에리직톤의 폭력은 정당하다. 그것은 더 ‘큰 악’에 저항하는 ‘작은 악’일 뿐이다. 그러나 실패한 자들의 이야기는 안정과 질서의 신화가 되어 권력의 확대재생산에 기여하는 법, 도전에 실패한 에리직톤은 ‘불경’한 자로만 그려진다. 반면 똑같이 권력에 도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파라오의 신화를 해체하고 자유와 해방의 신화를 창조한다. 에리직톤과 달리 그는 도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여 태혁은, 문제는 성공의 여부지 도전의 여부가 아니라 판단하고, 최후의 모세가 되기 위해 우선은 기꺼이 에리직톤의 운명을 감수하기로 한다.

그러나 과연 모세의 신화는 자유와 해방의 신화이기만 할 것인가. 혁명이란 결국 과거의 신성에 대한 불경을 오히려 신성화하는 것. 신화가 그 본질상 권력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면, 모세가 파라오에게 승리하는 순간 그의 자유와 해방의 신화는 곧 안정과 질서의 신화로 화하지 않겠는가. 이는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를 받아 내려왔다는 사실에서 명백하게 확인된다. 아무리 좋은 계명이라 하더라도 율법이란 본질적으로 질서를 위한 것이며, 궁극에 이르면 지배와 복종을 강요하는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세는 신성을 입은 인물이다. 그가 유대민족을 출애굽 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 명령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지, 그 자신의 힘과 지혜로 계획하고 행동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신성에 도전한 사람은 모세가 아니라 오히려 파라오이다. 파라오에게 내려졌던 온갖 재앙들을 생각해보라. 성경 자체를 하나의 신화로 읽고 비신화화를 시도한다고 해도 모세 뒤에 서려 있는 신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이 모세를 대리인으로 세운 하나님의 권능에 힘입은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지혜와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승리한 자를 위해 나중에 덧붙여진 것에 불과하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권력의 신화화를 증명하는 것이다. 결국 자유와 해방의 신화도 그것이 권력과 함께하는 순간 안정과 질서의 신화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하나는 신성화된 권력에의 도전은 결국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한 번도 이 길을 택하지 않았다. 권력이 인간의 오랜 욕망이라면 자유는 인간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번째 결론, 즉 권력이 스스로를 신성화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그 권력에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나아가 권력 구조 그 자체의 해체 혹은 분산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태혁의 문제의식은 아직 여기에까지 이르고 있지 않다. 이 소설이 쓰인 80년대에는 아직 파라오의 신화를 해체시킬 수 있는 모세조차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세가 자유와 해방의 삶을 줄지, 그 자신을 신성화할지는 나중에 고민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 누구든지 우선은 모세라도 되어야 했던 시대, 그것이 한국의 70∼80년대가 아니었을까.

‘사람의 아들’과 ‘에리직톤의 초상’이 인간의 관점에서 신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있는 것은 그것이 소설의 본질에 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대상황이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의 부조리는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과 함께 정의로운 원칙으로서의 신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유대·기독교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이지만, 불의(不義)가 세상을 지배하면 할수록 그 질문은 한층 더 실존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정말 선하고 전능한 신이 없기 때문인지, 신이 인간의 논리를 초월하는 존재이기 때문인지 지금까지 그 어떤 신정론(神正論)도 논리적인 결함 없이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질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소설은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 의의가 있기도 하려니와, 신의 존재를 해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인간과 이 세계의 본질에 대해서는 성찰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세계의 부조리와 폭력에 대응할 힘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성(神性)에 대한 탐구는 그런 의미에서 인성(人性)에 대한 탐구와 맞닿아 있다. 신성과 인성을 대립적인 것으로만 파악한 ‘사람의 아들’이 신을 죽이고 마침내 인간마저 죽일 수밖에 없었다면, ‘에리직톤의 초상’은 다성적 인물들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수직과 수평이 변증법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형상화해냄으로써, 80년대에 활발하게 제기되었던 정치·사회적 문제들이 결코 종교적 인식과 무관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태혁은 형석이나 동팔처럼 수평 지향적 인물이지만, 형석처럼 개인의 실존적 고민에 갇혀 있지도 않고, 동팔처럼 신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제도화된 종교가 강요하는 권위적인 신은 신화화된 권력의 산물이지 신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 신태혁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가 강조하는 예언자 전통에 따르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안정이나 질서를 강조해 인간을 노예화시키는 현상 유지의 지지자가 아니라, 개혁적인 해방자이다. 신태혁의 등장으로 ‘에리직톤의 초상’은 보다 풍성한 신의 초상을 얻는다. 신화화된 기독교의 신이 이제 신화를 거부하는 신으로 되살아나 “무소부재한 이 놈의 정치권력에 대응할 수 있는 힘”(2: 210)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신은 인간적이고, 인간은 신적”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자체를 자유와 해방의 종교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태혁은 현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단행하면서도 기독교를 떠나지 않는다. 그는 민요섭과 달리 ‘교회 안에서’ 교회와 싸우며, ‘믿음에 근거해’ 인간의 수평 질서를 방해하는 사회의 억압구조와 싸운다. 그러므로 그의 실패는 조동팔이나 최형석과 달리 그의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된다. 사랑이라는 말은 관념어이지만, 사랑 자체는 관념이 아닌 바, ‘사람의 아들’의 다소 교조적 분위기는 ‘에리직톤의 초상’에 와서 삶의 구체성을 획득한다. K중공업 방화 사건을 선동한 혐의로 수배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때도 그는 그 고통을, 함께 고통당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혜령이 태혁을 이해하게 된 것도 그의 그 뜨거운 인간애를 발견하庸?壙痼見? 그의 폭력이, 형석의 그것과 달리 구원을 가능케 하는 희생으로 읽힐 수 있는 것도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에리직톤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의 예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5. 신화의 해체와 새로운 소설의 탄생

종교적 언어로 치환되는 순간, 절절하게 다가오던 현실의 언어들이 돌연 퀴퀴한 곰팡내를 풍기는 경우가 있다. 사랑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이제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의 광고문구 같은 그 말에 더 이상 감읍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삶 속으로 파고들지 않는 한, 신의 사랑이란 하나의 추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신태혁을 만나기 전까지 정혜령의 사랑 또한 이 추상에 다름 아니었다. 형석은 그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의 선생이었다는 기억 때문만이 아니다. 그녀의 사랑이 수직적 질서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그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희생했던 것이 아니라, 희생하기 위해 사랑했던 혜령은 구체적인 인간의 추악함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런 정혜령이 신태혁의 실천적인 사랑을 지켜보면서 점차 삶의 궤도를 수정하기 시작한다. 태혁을 이해하고 그의 노동 운동에 동참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녀의 이런 변모가 중요한 까닭은 그녀가 그동안 수직적 질서를 강조하는 축에 서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를 매개로 정상훈과 김병욱 역시 신태혁이 상징하는 수평적 질서의 세계와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되고, 이로써 소설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변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각기 자신이 택한 길 안에서 꿈틀거리며 변모하고, 그 길 내에서 궁극을 지향하지 함부로 서로 뒤섞이거나 전향하지 않는다.”(진형준, ‘열린 다원적 인식’, 이승우, ‘에리직톤의 초상’, 살림, 1990) ‘내적으로 설득해오는 다른 말들과의 투쟁’(미하일 바흐친, ‘장편소설과 민중언어’, 창작과비평사, 1988, 166쪽)을 통해 새로운 문맥 속에서 서로를 활성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의 아들’이 이항대립적 관념의 갈등만을 보여주는 단성적 관념소설에 머물고 있다면, ‘에리직톤의 초상’은 “다양한 관념의 갈등을 통해 존재의 대화적 의미를 탐색하고, 이러한 순환적 대화성으로써 이항대립적 관계를 붕괴시켜 정치적 구조의 허구적 토대를 해부하고자 하는 다성적 관념소설”(황순재, ‘한국 관념소설의 세계’, 태학사, 1996, 60∼64쪽 참고)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다성성이야말로, ‘에리직톤의 초상’이 ‘사람의 아들’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화적 세계를 해체하고, 진정한 의미의 소설에 다가갈 수 있었던 동력이다. 인성과 신성의 세계가 단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립 속에서 춤추고 대화하며 하나의 율동을 만들어내는 소설이 탄생하기를, 하여 우리의 소설적 지평이 보다 풍요로워지기를, 이제 꿈꾸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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