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유품
성 명 : 유희란
여러 장의 광고지가 붙은 철문을 열자 현관에 슬리퍼 한 켤레가 보였다. 들어서기 전, 나는 목장갑 낀 손을 두어 번 마주쳤다. 둔탁한 소리의 선명함이 가라앉은 공기를 가르고 고여 있는 먼지를 불러냈다. 적연한 가운데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으나 그것은 순전히 나만의 절차였다. 타인의 손길을 원할 리 없으나 마지못해 맡겨야 하는 것들에 대한 예의이며 인사였다. 시작하렵니다. 유족은 수거와 정리 그리고 청소와 소독을 의뢰했다.

여러 날이 지난 후의 발견은 이웃의 신고도 아니었으며 더구나 자식들의 진술도 아니었다. 독거노인을 찾아다니는 봉사자에 의해서였다. 영하의 기온으로 켜켜이 쌓인 지층이 얼어붙은 날이었다. 검은빛의 창백한 몸을 몇 날 며칠이고 떼지 않고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고인은 소파에 고요히 앉아있었고 바닥엔 한 입 베어 문 자국이 남아있는 토마토가 뭉그러져 있었다. 삶의 마지막에 들고 있던 그것은 형체를 잃고 색을 잃고도 자신을 알리고 있었다. 그 언저리에는 냄새에 이끌려 들러붙었던 파리가 굳은 채 메말라 있었다. 사망한 지 일주일 정도라고 추측한 고인의 상태는 그나마 깨끗했으며 시취도 견딜 만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해 주는 듯했다.


그림=최정현 삽화가

인기척 없는 어둠을 비집고 희부연 빛줄기가 거실 바닥에 온몸을 붙이고 있다. 부유하는 빛의 편린 사이로 먼지가 꿈틀거렸다. 잔뜩 부풀다가 일렁인다. 운동화를 신은 채 거실의 마룻바닥을 디디는 순간 귀가 얼얼해짐을 느꼈다. 감청되지 않는 수런거림이 끊임없이 귓전에 닿았다.

서둘러 주세요.

시신을 옮기고 나자마자 유족들은 재촉했다. 홀로 살다 떠난 고독사였으므로, 그 흔적 또한 하루라도 빨리, 깨끗하게 지울 수 있을 만큼 복잡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연고가 없는 무연사에 비하면 그래도 괜찮은 요구사항이었다.

유품정리사. 유족을 대신하여 고인의 물건과 집 정리를 하는 전문직이라고는 하나, 누군가의 마지막 자리를 함부로 들어내는 일은 매번 익숙하지 않았다. 가만히 놓여 있는 유품은 추억을 내보이지 않았고 해석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게다가 유족들은 여유가 없었다. 인감이나 통장 따위만을 거론하는 유족도 있었고, 사진첩과 보험증권 같은 것을 챙기는 이도 있었다. 모든 정리가 끝난 후에야 잊었던 무언가를 찾아달라고 주문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수거하는 과정에서 쓰레기와 남겨야 하는 물건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았는데 이번에 의뢰한 유족은 그마저도, 원하는 물건이 아무것도 없었다. 수령인이 없는 유품은 분별작업이 필요 없게 된 물건이었다.

한복판에 우두커니 놓여 있는 일인용 소파와 그 맞은편의 두껍고 검은 텔레비전. 누런 벽에는 인물사진 몇 개가 걸려 있고 그 옆으로 숫자가 큼직한 달력이 삐딱하니 붙어 있다. 어떤 날짜 위엔 사인펜으로 쓴 짧은 메모가 있기도 했다. 어딘가에 붙잡힌 채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동그란 시계는 처음 본 누군가의 얼굴 같았다. 정지해 있던 시계의 초침이 몇 번 움직이고는 다시 고요했다. 필사적인 움직임처럼 보였으나 아주 잠시였다.

검은 텔레비전 화면에 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잿빛 덩어리가 서성이다 흔들리고 있다. 수많은 시선이 나를 바라보는 듯 여겨져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모든 사물과 생경하게 만났으나 그 낯섦은 또다시 나의 기억 속으로 방향을 잡으려 하고 있다. 익숙한 걸음이고 오래된 보법이었으나 나는 원한 적이 없었다. 흔들리는 그 바람에 현기증이 일고 속이 메슥거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 신물을 겨우 삼키는 사이 아랫배가 울렁거린다. 모처럼의 움직임이 오랫동안 느껴진다. 다섯 달이 넘어가면서 태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자인 내가 유품정리사를 하려 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반대했다. 나의 선택은 매우 부적절하며 그러므로 몹시 끔찍한 일이 될 거라고 했다.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은 초조했으나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어머니는 괘종시계를 바라봤다. 집 안에서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어머니를 본 지 아홉 달이 지나고 있었다.

시계하고 대화해. 소리가 거슬리긴 하지만 가끔은 친구 같아.

언젠가 어머니가 말했다. 또 그렇게 머물고 있는 어머니의 눈길을 좇아 나는 벽에 붙어 있는 시계를 바라봤다. 누런 시계판 위에 초침은 보이지 않았다. 불균형하게 커다란 시계의 추가 좌우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붙박여 있던 두 개의 바늘이 겨우 움직임을 보였다.

그뿐인 줄 알아. 사진 보면서도 얘기하고 냄비하고도 얘기해.

밥과 반찬들을 담은 냄비 안에 달랑 수저 하나 꽂아 텔레비전 앞에서 먹고 있던 어머니는 뭐가 웃긴지 냄비에 냄, 자를 발음하는 것과 동시에 몸을 뒤떨며 웃었다.

무슨 얘길 하세요?

내가 묻자 흐느적거리는 몸으로 냄비를 붙잡고 수저 한가득 밥을 담아 입에 넣었다.

그날 있었던 일. 다음날 해야 할 일.

내가 온 것이 반가운 탓이었을까. 입에서 튀어나온 밥풀을 연신 주워 입으로 가져가면서도 말하기에 바빴다.

화가 나는 일도 얘기하고 슬펐던 기억도 얘기해. 우습지.

어머니는 주방으로 걸어가 수저를 꺼내 개수대 속에 넣고는 밥이 남아 있는 냄비의 뚜껑을 닫았다. 어머니의 머리 위 형광등이 계속 깜박거렸다. 거실 한쪽에는 다양한 책들이 탑처럼 쌓여 있고 바닥엔 색색의 소쿠리가 죽 늘어져 있다. 그 위에 말라가는 것들이 죽은 벌레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다. 나물도 있고 버섯도 있었는데 그중에는 모양으로만 봐서는 지네나 귀뚜라미라고 확신할 만큼 이상하게 말라가는 것도 있었다. 주전자에 물을 받으며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려고 목을 길게 늘였다.

거긴 살 만해?

내 앞에 내려놓은 머그잔 안에 꿀물이 찰랑거렸다. 김이 모락모락 났다. 어머니의 집에서 분가하여 혼자 시내로 옮긴 지 이 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교통편이 좋으니까. 뭐.

나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는 물을 머금은 입안에 약 몇 알을 넣고 삼켰다.

노인네, 생긴 건 멀쩡해 가지고.

소맷자락으로 입가를 훔치고 어머니는 다시 물을 마셨다.

어디 아파요?

인생이 별게 아니야. 하루하루 즐기면서 살다 가야지. 하긴, 너무 늙어서 즐길 만하진 않아.

식탁 위에 물컵을 소리 나게 내려놓고 어머니는 잠깐 사타구니를 긁었다. 나는 꿀물을 조금 마셨다. 목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뜨거워졌다. 뿌옇게 흐려진 안경으로 어머니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싫지? 하지만 넌 나한테 화낼 자격 없다. 아직 모르니까.

그 작년, 고희를 넘긴 어머니가 어깨 사이로 목을 움츠렸다. 탄력 잃은 얼굴에 패인 주름은 오히려 생기 같은 걸 주고 있었다.

다른 욕망 같은 거야.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으니까.

어머니가 싸준 무말랭이를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나는 서둘러 밖의 공기를 쐬고 싶었으나 현관문에 묻어 있는 얼룩을 손가락으로 닦고 있었다.

자주 와.

등 뒤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직한 물음처럼 끝을 올린 후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직도 그 일 하니?

나, 멀리 가요.

대답 대신 말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밖을 향해 걸음을 내딛고는 문을 등진 채 닫았다. 그날 이후 나는 어머니를 보러 가지 않았다.

둘째 생일. 숫자 하나가 파란색의 둥그런 테두리에 감싸여 있다. 달력 속의 그날 이외 다른 날은 눈에 띄지 않았다. 죽음도 유예할 수 있을 듯한 기다림이 묻어 있었지만, 그날은 오지 않았고 누군가는 이미 살고 있지 않았다. 두껍고 검은 텔레비전 아래에는 궤처럼 생긴 나무 장(欌)이 놓여 있었다. 주방으로 향하는 쪽으로 방문이 보였다. 냉기 가득한 침침한 방은 텅 빈 것 같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여덟 자 장롱 하나와 그 옆에 나무 옷걸이가 둥글고 짧은 가지를 뻗고 있다. 걸려 있는 옷가지들이 색 바래지 않도록 커튼은 빈틈없이 처져 있었다. 창문으로 다가가 단풍 색깔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답답하도록 뿌연 빛이 유리창 안에 고여 있다. 문의 쓰임새를 잊은 것처럼 창문이 뻑뻑하게 열렸다. 차가운 공기가 방안으로 스며들고 나는 그제야 숨을 크게 내뱉었다. 한겨울의 숨결이 코 안으로 아리게 들어찼다.

어때? 짐이 많아?

쓰레기 담는 봉투와 박스를 들고 뒤늦게 들어온 이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트럭 하나면 되겠는데요.

오늘은 일이 좀 수월하겠네.

자연사는 정리사에게 손쉬운 축에 드는 거였다. 죽음을 다루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의뢰받은 곳이 살인이나 자살 현장일 경우엔 분명한 예외가 있었다. 혈흔이나 동원된 물건을 마주해야 하는 형편에선 대화는 물론이고 서로의 시선이 닿는 것마저 삼갔다.

혼자 늙어 죽어도 모르나.

저벅거리는 발걸음 사이로 이 부장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이 부장은 매번 같은 말을 했다. 노련하게 무심한 체하는 억양에 연민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쓰레기의 양에 따라 받을 돈을 정산하는 일에 조금은 민망함을 감할 수 있을지 몰랐다. 외롭게 살다 간 그들의 세상을 들추어 정리하고 그 일로 인해 돈을 받게 되는 순간에는 죄스러움마저 느끼는 까닭이었다. 그래서일까. 업체 대표는 처음부터 명확한 선을 그었고 매우 적합한 교육을 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도, 느끼지도, 해석하지도 말 것. 65세 이상 노인인구 580만 명. 이 가운데 120만 명이 독거노인. 방법과 시기는 다르지만 죽은 후엔 반드시 무엇인가를 남긴다. 수요가 있는 장사인 셈이었다.

죽었는데도 용서 못 하는 게 대체 뭐야. 이 부장의 중얼거림 뒤로 주방 선반의 서랍이 요란하게 열고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소 사무적인 말투로 의뢰를 맡긴 유족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마지막 흔적 안에 그들은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 했다. 현장에 와서 귀중품이나 가재도구 등을 확인한 후에 유품정리를 신청해야 하지만 그런 절차마저 원하지 않았다.

전부 처분해 주세요.

그들이 남긴 말이었다. 커튼 자락이 덮고 있는 벽과 장롱 사이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돌돌 말려 있는 양말이 보인다. 원목 장롱 한 짝은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엷어지고 짙어지기를 반복하는 방의 음영이 마치 그로 인한 것으로 느껴졌다.

이거 못 들어가요.

트럭 기사가 난감한 얼굴로 장롱과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봤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이사한 집은 천장이 낮았다. 천장이 낮은 게 아니라, 일 층에서 몇 계단을 내려가 있는 집이라 바닥이 높은 거였다. 방에 장롱이 들어가지 못해 결국은 장롱에 붙어 있는 작달막한 다리를 잘라야 했다. 마당 구석에 비스듬히 누운 장롱에는 잘려나간 결 따라 가시가 돋아나고 있었다. 지켜보던 어머니는 자꾸만 코를 힝, 풀었다.

이사하는 집에 남자의 그림자라곤 보이지 않는 것이 자랑이라도 되는 듯 어머니는 씩씩하게 짐을 날랐다. 그리고 간간이 목에 낀 먼지를 뱉어냈다. 남자처럼 마당 한가운데 있는 하수도에 가래침을 켁, 뱉었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어머니가 내는 소리처럼 나의 몸 어딘가에서도 켁, 힝, 소리가 나고 있었다. 가족사진의 포장을 풀어 이삿짐들 사이에 세우고는 수돗가로 가서 물을 틀어 흘려보냈다. 사진 속 머리를 맞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품에 안긴 어린 내가 짐 옮기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 먹으니까 수다스러워졌어. 싫지?

어머니는 습관적으로 싫지, 라고 물었다. 이십여 년 전 이사하는 날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근래 그만두었다는 복지관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제 좀 바꾸세요.

꼭 나 같지 않냐?

삐딱한 장롱에 기대고 선 어머니의 모습도 삐딱했다. 바닥 높은 집을 떠나 두어 번의 이사가 있었지만, 장롱은 늘 거기 있었고 어머니는 점점 장롱을 닮아갔다.

볼래? 전에 배운 거야.

몸을 곧추세우고 어머니가 방바닥에 발을 이리저리 옮기기 시작했다. 슬로 퀵퀵, 슬로, 슬로 퀵퀵. 입으로 박자를 맞추며 스텝을 밟았다.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고개를 헐렁하게 움직였다. 한 손은 누군가의 어깨에 사뿐히 올린 것처럼 곡선을 만들고 다른 한 손은 팔을 벌려 허공에 걸친 채였다. 늙은 얼굴을 들고 춤을 추는 어머니의 발걸음은 허방을 밟는 듯했고 그에 따라 하늑거리는 팔은 노를 젓고 있는 것 같았다. 외딴곳으로 향하는 배를 타고 물살을 가르는 손짓이었다.


그림=최정현 삽화가

몸뚱이가 둔해. 창피한 노릇이지.

춤을 멈추고 어머니는 다시 장롱을 짚고 기대섰다. 유리창으로 비친 설핏해지는 햇빛 속에 어머니의 얼굴이 뿌옇게 바래고 있었다.

왜 그만뒀어요?

죽었어. 근사한 파트너였는데.

별일 아니란 듯이 어머니가 대답했다.

이게 정상적인 일이야? 어제 있었던 사람이 오늘은 없는 거야. 어디에도.

매듭을 짓듯이 손에 쥔 손수건을 두번 세번 눌러 접었다. 그러고는 다시 펼쳤다.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대신 손수건을 오므려 그곳에다 코를 힝, 풀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가게?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코 주위를 마저 닦고 있는 어머니의 눈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더는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아랫배가 단단하게 뭉친다. 이따금 그렇게 나에게 무언가를 알리려는 것만 같았다. 삶이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만큼, 지금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의식하게 하려는 본능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염려하는 마음이 드는 건 잠시였다. 그곳은 단단한 모서리도, 날카롭거나 깊은 틈새도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언젠가 나를 품었던 곳이기도 하니까. 안방과 마주 보고 있는 문을 열었다. 습기에 문짝이 들뜬 탓인지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좁고 답답한 화장실이었다. 변기와 세면대에는 찌든 때가 불규칙한 문양과도 같은 얼룩으로 그늘져 있었다.

짐은 많지 않은데 모두 쓰레기네. 원하는 게 없으니 다 버려야 하잖아.

열 평 남짓한 집 안을 이 부장은 이사 견적서를 들고 왔다 갔다 했다. 천국으로의 이사라고 생각들 하라고. 업체 대표는 이사 견적서라고 쓰여 있는 용지를 보이며 말했었다. 이 부장은 냉장고의 문을 열어보고 세탁기 안도 꼼꼼하게 살폈다. 냉장고에 음식물은 거의 없었고 빨래통에는 수건 몇 개와 양말이 전부였다.

수령인이 없는 정리 작업은 수월했으나 고독사임을 또 한 번 입증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날은 잠자는 일처럼 어렵지 않던 것도 더디기만 했다. 나로 인해 마지막 끈마저 놓아버리게 된 것은 아닌지. 누군가의 사연을 그대로 영영 버리고 온 것은 아닌지. 창으로 흘러들어오는 고르지 못한 바람을 느끼며 나는 머리를 쓸어올렸다.

힘 안 들어?

느닷없는 이 부장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나는 점퍼의 앞 지퍼를 목까지 끌어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겨울의 두둑한 옷으로 누구도 나의 임신을 알지 못했다. 이 부장이 귀 뒤에 걸쳐 있던 펜을 빼들고 전표에 표시하기 시작했다.

오래돼 놔서 재활용할 것도 별로 없네.

말하고는 지자체의 재활용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여덟 자 장롱 하나. 냉장고 하나. 세탁기 하나. 구가다 텔레비전하고. 근데 장롱 한 짝은 구멍 났어. 버려?

수거할 물건의 종목과 수량을 불러주고 의심이 가는 것들에 대해서는 갖고 갈 만한 물건인지를 타진했다. 큰 짐을 먼저 내어 가야 정리가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장롱의 문을 열고 쌓여 있는 물건들을 바닥으로 내렸다. 옷가지와 가방과 박스들. 내복은 한 번 입지도 않은 곽째였다. 차곡차곡 개켜 있는 이불 위에 연두색과 갈색 베개가 놓여 있다. 집 안에 들어와 쌍을 이루고 있는 건 베개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측한 사망시간이 정오쯤이었으니 사람들이 한창 움직이고 있던 시각이었다. 자고 일어나 이불을 개켜 장롱에 넣고 두 개의 베개를 가지런하게 올리는 고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장롱 한구석에 골판지 상자가 보였다. 꺼내려니 제법 묵직했다. 스프링이 달린 스케치북이 수북이 담겨 있었다. 손에 잡히는 한 권을 빼들었다. 그림일기. 1학년 2반 김현수. 스케치북의 표지와 모퉁이가 심하게 닳아 있었다. 무심코 몇 장을 넘겼다.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과 비뚤배뚤하게 쓴 일기가 발랄했다. 재미있었다. 즐거웠다. 좋았다. 몇 줄 글의 끝맺음은 주로 이런 식이었다. 잠시 유족이 떠올랐으나 원하지 않는 물건을 전해주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나는 스케치북을 종이 재활용 박스에 넣었다.

쓰레기봉투를 벌리고 입던 옷가지를 구겨 넣었다. 변색하거나 낡은 것들과 함께 입을 만한 옷들마저 쓰레기가 되고 있었다.

곽을 열어 옷감과 종이를 구분했다. 한 번 입지도 않은 그것마저도 봉투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불이나 옷가지들은 그저 그렇게 버려지는 물건이었다. 의미가 담기고 세월이 담겼기에 더욱 지켜지는 점이었다. 고독사였으므로. 그렇게 살다간 누군가 소유하고 있던 것이므로. 발인 때 옷가지와 즐겨 들던 가방이나 자주 신던 신발 등은 고인과 함께 보내지기도 하지만 유족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은 인부들이 왔다. 방 안을 휘둘러보다 장롱부터 들었다. 처음엔 움직일 뜻이 없다는 듯 버티던 농짝이 쩍, 소리를 내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정이나 동요가 보일 리 없었다. 그저 검은 구멍을 품고 침착하게 밖으로 끌려나갔다. 인부들의 발소리만 부산하게 들렸다. 소파와 텔레비전, 그 아래의 궤. 그리고 냉장고, 세탁기. 차례로 나갔다. 방과 거실 바닥엔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이 더미를 이루며 널브러져 있다. 황폐하게 보이는 거실 벽면에 걸려 있던 사진액자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나는 무심코 배를 감싸고는 어깨를 움찔했다. 다리 사이에 아련한 통증이 느껴진다. 답답하고 무겁고 느른한 느낌이다. 벽을 짚고 잠시 그대로 심호흡을 했다.

바닥이 높은 반지하 방에서 어머니는 누군가를 부둥켜안았다. 남자들은 매번 달랐다. 너무 낯설어 그들의 얼굴이 모두 다르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계단을 내려가 방문을 열기까지 나는 주저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모두 내 곁을 떠나.

그렇게 말하고는 다리 잘린 장롱 아래에서 돋아난 가시에 상처 입은 사람처럼 어머니는 신음하곤 했다. 집과 집의 담 사이로 나는 숨어들었다. 시멘트 바닥에 돋아있는 사초를 바라보다 얼굴을 가슴에 박았다. 액자 속의 가족사진이 찢겨 있던 날이었다.

넌 많은 이들을 떠나오거나 떠나보내야 하는 팔자란다. 그래서 내가 혼자인 거야.

그 당시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거라곤 열한 살이라는 나이와 이름 정도였다. 그런 나로 인해 어머니의 삶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유독한 말이었다. 부인하고 싶었으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어머니가 나를 속일 리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말을 할 때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원망 어린 시선과 뜨거운 입김. 그 느낌은 번번이 내 주위에 머물렀다. 그럴 때마다 몸을 깊이 웅크려 곁에 더 많은 자리를 내주었고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내게 묻곤 했다. 감당하고 있는지를.

아직 젊구나.

언젠가 나에게 한 이야기를 기억하느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베란다에 들어찬 햇볕이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거실 탁자의 모서리에까지 부딪힌 빛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어쩌자고 물었을까. 나는 눈을 가늘게 감았다.

이 정도 나이 되면 유년시절의 기억도 그 나머지 기억도 없어.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

많지 않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어머니의 얼굴과 오목한 눈동자가 빛바래 보였다.

사람을 만들려면 열 달이 걸리잖아. 그런데 인간을 만들려면 육십 년은 걸린단다. 이제 잘 살 수 있는데, 얼마 안 남은 거야.

어머니는 잘, 을 한참 동안 끌면서 말했다.

그거 아니? 해가 날마다 짧아지는 거.

묻고는 나를 바라봤다. 맥없는 굴곡을 이루고 있는 머리카락과 희미하게 얄팍해진 어머니의 눈썹이 한없이 낯설었다. 겨울이 오고 있는 계절이니 그럴 법도 한데 어머니가 말하는 날은 알 수 없는 풍경 속의 시간을 말하는 거였다.

추운 계절이 지나갈 무렵 그를 만났다. 유품정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고속버스 안에서였다. 무슨 일을 하세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그가 내게 물었다. 저는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합니다.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는 그렇게 자신을 먼저 이야기했다.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나는 피식 웃으며 차창 밖을 바라봤다. 백골을 곱게 분쇄해놓은 것 같은 하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찬란한 불구덩이 속에서는 용기를 잃을 여유가 없어요.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나를 맞이하는 것처럼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은 둥그스름했다. 그는 나와 많이 달랐지만 오히려 나눌 게 많았다. 나는 말수가 적었고 그는 적당하게 수다스러웠다. 나는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고 그는 몸에 열이 많았다. 그의 곁에서 나는 초봄의 찬바람을 느끼지 않았다.

그에게서 떠나왔다. 그와 같이하던 공간을, 더불어 보내던 시간을 떠났다. 무엇을 지키고자 함이었을까. 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난생 처음 듣던 날 어머니를 떠나왔으며 그의 아이가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된 날 그를 떠나왔다. 생에 어떤 법칙이 있다면, 그래서 더하는 일은 놔두고 빼는 일을 스스로 감행한다면 살점이 떨어지는 일만은 없으리라는 바람 때문이었다.

먼지가 바닥에서 솟듯이 인다. 수거의 막바지였다. 쌓여 있던 더미가 거의 치워질 무렵 장판 밑바닥에 노트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누군가 보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갈피를 벌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너무 잔뜩 먹었다. 기운이 나니까 노여움이 앞선다. 몇 개의 단문이 쓰여 있었다.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또박또박한 글씨체는 오히려 맥이 없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느끼지도 해석하지도 말 것.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노트를 접었다. 그리고 그것 또한 재활용 박스에 넣었다. 빗자루를 들어 바닥을 쓸었다. 안방과 주방 그리고 거실. 빈 화분만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베란다도 쓸었다. 먼지와 흙, 자루가 없는 볼펜, 어딘가에 박혀 있던 못, 단추 같은 것들이 모였다. 쓰레기 받이에 쓸어 담아 쓰레기봉투 속에 털었다. 온몸에 땀이 나면서도 찬 기운이 들었다.

뭐지?

이 부장이 박스에서 노트를 꺼내들었다.

후회되는 것. 먹고 싶은 음식. 치료나 의료 등에 관한 희망.

노트를 펼쳐 읽었다. 고인이 써내려간 부분은 차마 소리 내지 않은 듯했다.

이런 일을 하고는 있지만 무슨 방도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 부장은 노트를 박스에 도로 넣었다. 경력 오 년 차임에도 이런 광경을 처음 대면하는 사람 같았다. 연민은 교만이야. 그러나 언젠가 말한 대로 이 부장은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청소와 소독 팀은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오전에 예약되어 있는 집을 들렀다가 오는 까닭이었다. 예약건수가 늘어나도 직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일이 바빠지면서 이 인조를 이뤄 수거와 정리, 청소와 소독 두 팀으로 분담하여 하고 있었다. 없는 살림살이임에도 수십 개의 쓰레기봉투가 가득 찼다. 중량을 재어 처리 비용계산서를 만들기만 하면 끝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세제 묻힌 수건으로 가구가 있던 자리의 바닥과 벽을 닦아냈다. 그나마 집안에 시취가 배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곰팡이 슨 천장도 의자에 올라가 닦았다. 조심스럽게 한쪽 손으로 벽을 짚고 중심을 잡았다. 젖고 마르기를 반복한 탓으로 천장은 우둘투둘했다. 바닥 장판은 마모된 흔적이 마치 본래 있던 무늬처럼 결을 이루고 있다. 나는 닦고 또 닦아냈다. 생의 범위 안에 자리하던 누군가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었다.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자식은 부모를 목구멍에 묻습니다. 귀를 막아도 입을 막아도 소리가 들리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수화기 너머에서 독백처럼 흘러나왔다. 고해이거나 책 속의 어느 부분을 읊고 있는 듯도 했다. 여자의 목소리는 곤혹스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떨리고 있었으나 단호했다. 노트와 스케치북에 대해 말을 꺼냈을 때 유족 중 한 사람의 대답이었다.

그냥 처리해 주세요.

당부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거실의 유리창과 창틀을 닦았다. 여닫기가 수월하지 않았을 만한 먼지와 부스러기가 창틀에 끼어 있었다. 이 부장은 주방 싱크대를 닦고 있다. 해서 먹은 것이 별로 없는지 가스레인지와 선반에 묵은 때가 거의 없다고 했다. 싱크대 옆에 있던 식탁 위엔 날짜 지난 영양제와 복용하던 갖가지 약들이 즐비했다. 마지막 쓰레기봉투에 모두 쓸어담았다. 진공청소기와 대걸레, 다양한 클리너 용품을 가지고 소독팀이 도착했다. 청소기의 모터 소리가 들리고 벽과 천장에 분사되는 소독약 냄새가 집 안에 퍼졌다. 마스크를 쓰고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쓴 직원들이 분주한 발걸음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청소기의 모터 소리 탓인지 나는 귀가 먹먹했다.

매번 다짐하면서도 그게 안 되네.

어머니의 음성은 한없이 낮았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그저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반가워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말하고는 봄날 햇살을 받으며 농담이라도 한 것처럼 어머니가 웃었다. 웃음소리가 금세 사라지지 않고 대기 속에서 느릿느릿 맴돌았다. 나는 허공 어딘가에 눈길을 두었고 어머니는 나를 향해 얼굴을 삐뚜름하게 기울였다.

언젠가 나도 네 곁에서 떠나가겠지?

억울한 순간이라 여겨질 때면 그것과 함께 의문스러워지는 점이 있곤 했다. 진정 그런 뜻을 품은 것인지. 내게 전하고자 함인지. 나는 어머니를 바라만 보았다. 그 질문에 나는 달리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기가 막혀. 늙으니까 더 그래. 넌 날 이해해야 해.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다만 몇 차례 손톱 가장자리의 부푼 살을 뜯어냈다. 어머니가 내게 다가와 나의 등을 가만가만 쓸었다. 까슬까슬한 어머니의 손바닥이 느껴졌다. 그 느낌이 견딜 만해졌을 때 어머니는 움직임을 멈췄다.

넌 내게 전부였어. 너도 그렇겠지.

늘 그렇게 어머니의 입에서 떨어진 문장은 물음처럼 끝이 올라갔다. 나는 거실 한구석에 쌓여 있는 책의 권수를 헤아렸다. 열 권을 넘기지 못하고 바닥 아래쪽에 있는 것부터 다시 세야만 했다. 그러다 소쿠리로 시선을 옮겼다. 수분을 잃고 오그라든 것들의 정체는 여전히 모호했다. 나는 그만 고개를 떨궜다. 내게 그토록 어렵고 두려운 기억을 남긴 것이 어머니의 말이었는지 그 말의 의미를 심장에 겨눠 패이도록 새긴 나로 인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그저 인생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쪼글쪼글해지고 무른 살을 스스럼없이 보이는 어머니를 바라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뜨거운 것이 넘어오려 하는 목구멍을 조였다. 어머니의 유품은 수령인이 없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기억을 간직한 물건은 구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림=최정현 삽화가

어머니의 얼굴을 본 지 아홉 달이 지났다. 어머니의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돌아선 적이 대부분이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앰뷸런스 소리가 요란하다. 그것과 함께 들려오지도 않은 소리가 귓전을 두드린다. 귀를 막아도 입을 막아도 들리는 소리였다.

수고들 하세요.

이 부장과 나는 수십 개의 쓰레기봉투를 트럭으로 옮기고 소독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 부장은 돌아서서 손에 낀 장갑을 벗어 바지를 툭툭 털었다. 현관 아래 좁은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나는 다시 올라갔다. 철문에 붙어있는 치킨, 중화요리, 야식 등의 광고지를 떼어냈다. 마지막 흔적이었다. 아파트 정문을 지나 사거리까지 걸어 나오는 동안에도 몸에 밴 소독약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건 유품 반출은 금지일세.

이 부장의 말이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등에 짊어진 가방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사거리 건물의 모퉁이 집에 들어가 이 부장은 막걸리를 마시고 나는 밥을 먹었다. 부침개의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막걸리 집이었다. 울컥울컥 넘어오는 위액을 삼키고 꾸역꾸역 밥을 넘겼다. 주인장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비어 있는 그릇에 반찬을 채워주고는 돌아섰다. 이 부장은 아주머니의 뒤태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잔을 들어 단번에 들이켰다. 옆 테이블은 반찬들이 다양하게 많았다. 생선구이, 쌈, 샐러드, 잡채 등이었다. 벽에 걸린 차림표 옆에 신메뉴라는 글씨가 붙어 있다. 정식 세트 개시. 막걸리 집도 많이 생겨나다 보니 차별화가 필요했던 걸까. 사람들의 언성 높은 말과 주문하는 소리, 간간이 들리는 웃음소리로 가게 안은 소란스러웠다.

산다는 게 뭔지 아나?

비워진 자신의 술잔에 막걸리를 따르며 이 부장이 물었다. 그리고 식당 안을 두리번거렸다. 아주머니를 눈으로 좇다가 드디어 빈 막걸리병을 들어 보였다.

기다리는 일일세.

젓가락으로 잔에 담긴 술을 휘적거리다 이 부장이 말을 이었다.

사람을 기다리기도 하고 때를 기다리기도 하지.

부장님은 뭘 기다리세요?

나? 나야 술을 기다리지.

이 부장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입안에 씹고 있던 전 조각이 튀어나왔다. 손바닥으로 입가를 쓱, 문대고는 또 그렇게 웃었다.

여자인 자네는 뭘 기다리나?

뭘 기다리나. 이 부장의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손목에 걸린 봉지가 묵직하게 덜렁이며 다리에 닿았다. 먹고 싶은 음식. 잡채. 재활용하다 누군가의 노트를 손에 쥐었다. 시선을 돌리려다 말고 거기에 적혀 있는 글을 읽고 말았다. 후회하는 것은.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 가보고 싶은 곳은. 거기. 누군가의 거기는 어디일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사십 분이 지나 집에 도착해서도 봉지는 따뜻했다. 방 가장자리에 서 있는 장롱문을 열었다. 한쪽의 경첩이 빠지는 바람에 문짝이 헐겁게 열렸다. 장롱 구석 컴컴한 곳에 괘종시계가 오락가락을 멈추고 우뚝 서 있었다. 그 옆으로 베개와 신발 한 켤레와 냄비 그리고 누군가의 가족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손목에서 봉지를 빼냈다. 그림자로 조각되어 있는 장롱 깊숙한 곳에 넣었다. 냄새가 고이기 시작한다. 명절이나 잔치 때나 볼 수 있는 음식이었으니 먹고 싶었던 걸까. 가방을 열어 내복 상자와 노트, 몇 권의 스케치북을 꺼냈다. 그것들 또한 장롱 속에 넣었다. 모든 것들이 대화를 걸어오길 기다리고 있는 듯 조용했다. 나는 오늘 또 누군가를 떠나보냈다. 그것으로 어느 누군가는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염치없는 것일까. 단편의 기억들이 어음이 되어 한없이 소란스러워지고 있다. 그 소리를 목구멍에 담고 담는다. 그리고 나는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안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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