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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려하고 화려한 문체, 빛나는 글쓰기의 <미실> |
| 번호 : |
1 |
작성자 : |
래몽래인 |
2005-04-15 |
조회 : |
86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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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향 가는 길, 차 안에서 읽으려 챙겨 들었다.
화랑세기에 전해지는 여인 미실.
왕후도 아니었고 진골의 뿌리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기생도 아니었으나 타고난 미색으로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은 물론이고 화랑 사다함 등을 비롯한 당시 신라의 이름난 영웅들을 모두 자신의 치맛폭 아래 감싸 안았던 여인.
책을 읽기 전 부터 알고 있던 미실에 관한 약간의 정보들이 오히려 이 책을 펼치기 까지 큰 기대를 하지 않게 했었다.
전해지는 기록 속에서 미실이란 인물이 너무나 특별한 생애를 살았기에 그 인물이 지닌 힘만으로도 한권의 '소설'이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 1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이라는 명함조차도 무색하게 말이다.
경주로 가는 차 안에서 책을 펼쳤다가 서울에 도착하기도 전에 마지막 장을 넘기고 책을 덮었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이 이렇게 즐겁게 책장을 넘기게 했을까?
많은 분들이 이 소설을 이야기 하면서 거론한,
'역사속에서 구현한 현대의 여성성'
'모성의 관능에 더해진 팜므파탈의 전형'
'자유스런 여성의 본질'
'페미니즘을 넘어 선 휴머니즘'
같은 수식어는 앞서 말했듯이 미실이란 실존의 인물이 이미 지니고 있던 것이었므으로 패스다.
소설의 이야기 얼개 역시 그녀의 삶의 궤적을 따라 가는 형식이므로 패스!
내가 혹하고 빠져 버린 것은 작가의 '글'이다, 예스러우면서도 정려한 문체다.
우아하고 장려하기까지 한 작가의 문체는 나로 하여금 아무런 거리낌 없이 천오백년 시공을 훌쩍 넘어들어 소설 속을 거닐게 만들어 주었다.
예를 들어보자면 신라를 대표하는 두 탑, 석가와 다보중에서 다보탑쪽이라고나 할까?
우리말과 우리글이 갖는 매력 중에서 투박하고 거친 것의 반대쪽, 세련되고도 섬세하고, 그러면서도 화려한 쪽의 매력이 거의 극점에 가까이 끌어올린 것이 이 소설 미실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삼백쪽이 훌쩍 넘어가는 한권의 소설을 읽는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는 리듬에 실려 노래하듯 읽었다고 하면 조금은 과장일까?
뭐 과장이라고 해도 그다지 크게 과장한 것은 아닐듯 싶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읽은 것이 틀림 없는 사실이므로.
문체의 빛남을 강조하다보니 이야기의 빛이 죽어버린듯 한데, 사실 이야기 또한 나름대로 재미를 지니고 있다.
다만 책을 들면서 예상했던 이야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어디서 본듯한 뻔한 상황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는 것들로 인해 이야기만 놓고 보자면 진부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공들이고 애쓴 문체만으로도 충분히 상쇄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아래에 인용한 일부만으로도 공감하리라.
그녀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도록 훈련 받았다. 무엇에도 조바심치거나 부러 채근하지 않도록, 스치고 스쳐 지나가고, 흐르고 흘러 사라지는모든 것들에 마음을 두어 고이도록 하였다. 시간은 그녀 곁에 머물러 아주 천천히 스치고 흘렀다. 미실은 바스락거리는 모든 시간의 소리를 들었다. 무수한 꽃들이 피었다 졌다. 새가 울 때마다 숲은 무성해졌다. 한개씩 젖니가 빠지고 새로이 간니가 한개씩 돋을 무렵 미실은 사람의 문자를 배웠다.글을 쓰고 읽으며 지금껏 지극한 벗으로 함께 했던 자연을 섬기고 축복하는 법을 익혔다. 반딧불 초롱을 켜고 상수리 열매껍질로 그릇을 삼아 보리 잎과 수수깡으로 풀각시를 만들어 소꿉놀이를 할 때에도 그녀는 공화의식을 잊지 않았다. 나뭇잎을 태워 피운 향이 파들파들 타들 무렵 서쪽을 향해 꿇어 앉아 꽃을 바치면 마음이 절로 간절해졌다. 무엇을 향해 간절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나뭇잎 향이 지펴 올린 구수한 연기처럼 그 방향을 정한듯 솟구치다가 시나브로 사라져 버리는 종잡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설레었다가, 안타까웠다가, 들떠 올랐다가, 종내는 마음의 벽을 사각사각 긁는 슬픔으로 가라앉고야마는 변덕스러운 감정이었다. 미실은 그 어지럽고 정체 모를 흔들림이좋았다. 몸을 돌아 빠져나오는 숨결과 몸속을 흐르는 피톨들이 그와 함께 요동하는 것 마저 황홀하게 느껴졌다. 미실이 진정으로 즐긴 것은 살림살이를 흉내 낸 소꿉놀이가 아니라 장난질을 핑계삼아 거듭 맛보는 간절함이.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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