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 이해하지 않으려 버팅기지만 않는다면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라는 미실의 말처럼 나는 미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엔 상대를 가리지 않는 노골적인 성애묘사가 충격적이었지만 삼국시대에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는 것을 안 이후로 놀랄 이유가 없었다. 지금의 가치관으로 본다면 미실은 성을 상품화한 창녀같은 여자지만 그 시대에 그녀는 색으로 삼대를 섬겨야 할 운명인 대원신통의 일원이었다. 신라최고의 미녀로 어려서부터 총기가 뛰어나 배운것을 고스란히 흡수한 그녀는 애써 드러내지 않아도 묘한 매력으로 남자들을 한눈에 사로잡아 버린다. 자기가 가진 조건과 자라온 환경이 성격을 형성하고 그 성격이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걸 내나이 삼십대 중반에 깨달았다. 나는 예쁘지도 않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으며 고지식한 부모밑에서 순결을 강요당하다 연애다운 연애도 못해보고 결혼했다. 열등감이 심한 반면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도 강해 '낮에는 현모양처 밤에는 요부'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살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내게는 없거나 부족한 미실의 능력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필요에 의해 쓰여졌다 버려질 수 있는 존재였기에 권력을 거머쥐었을 때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떠날 때를 아는자는 또 얼마나 멋진가! 마지막에는 모든것을 다 버리고 불문에 귀의하는데 늙고 병든 미실을 끝까지 곁에서 지키다 대신해 죽은 정인이 있어 그녀는 행복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세상을 정복하는 것은 남자지만 그 남자를 정복하는 것은 여자다'라는 말이 맴돌았다. 여자는 부드럽지만 그래서 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