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은 책의 문패명이기도 하고 책속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빛의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변하는 21세기의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도 여간 정감이 가고 아름답게 와 닿는 이름이 아닐까 한다. 입속에 넣어 되뇌이면 입에 짝짝 달라 붙게 되는 미실이란 인물을 오늘날에 되살린 장본인이 바로 소설가 김별아이며, 이 작품은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해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상(賞)'이란 감투를 썼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전부 매력적인게 아니며, 작품성 내지 완결성 또한 제각각인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간혹 개중에는 정말이지 상을 수상할 정도의 작품인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떨쳐 버릴 수 없는 작품들도 더러 존재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작품 만큼은 그런 염려의 범주에 넣지 않아도 되리라. 그만큼 상(賞)값과 김별아란 이름값을 상당부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작가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끔 단초 역할을 제공해준게 화랑세기다. 신라 화랑의 전기인 화랑세기속에 빈번히 등장하게되는 신라 여인 미실의 삶을 저자가 잘근잘근 씹고 반추해 내어 오늘날에 새롭게 조형해 낸게 바로 미실인게다. 미실은 우리 고전들을 읽다보면 우연치고는 너무나 똑같이 이미지화 되었던 기존 옛 여인들의 정숙하고 예의 바르며 남편에게 종속되었던 모습에서 180도 아니 360도 변화된 모습을 선보이게 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게 되는 옛 여인의 정형화된 틀 속에는 '이것만이 올바르고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사악한 것이다'라는 이분법적 사고나 가치만이 획일적으로 강요나 강제되었기 때문이리라. 아직까지도 화랑세기의 진위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런 연유에서 일 듯 싶다.
어느 책을 읽건간에 책을 들여다보는 순간만큼은 작가나 작품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몰입해서 읽는게 그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작은 예의와 배려가 아닐까 한다. 물론 책을 읽고 나서 신랄한 비평이나 혹평, 호평은 여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겠지만 말이다. 미실의 첫 장을 열어 나갈때도 이런 마음을 가져 봄은 어떨까.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치열한 권력 싸움의 틈바귀에서 쉽게 내쳐질 수 밖에 없었던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대원신통의 여인 미실. 자신에게 부여된 가혹한 운명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려도 그 어느 누구하나 지푸라기라도 건네주지 않음을 깨닫게 되면서 미실은 권력과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과감히 그 자신도 버릴 수 있어야 함을 느끼게 된다. '진정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라는 말이 있듯 미실은 이 의미를 마음으로 느끼게 되면서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변방의 아웃사이더에서 제도권의 핵심권력이자 실세로써의 역할을 하게 되기에 이른다.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을 색(色)으로 섬기는 색공으로써 뭇남성들을 그녀의 치마폭에 감싸안게 되면서부터 권력과 힘을 얻었다기보다는 그녀의 정해진 한계를 떨쳐 일어나게 되면서부터 자신의 진정한 자유를 찾게 되었던 것이리라.
미실이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목받는 점은 다음과 같으리라.
첫째, 역사속에서 잠자고 있었을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오늘에 되살린 점. 화랑세기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저자의 상상나래에 잠시 올라타서 천오백여 년전의 신라로 떠나본 이야기만으로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둘째, 현대를 사는 여성들에게 응원의 함성을 보낸다.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이미지가 풍기긴 하지만 미실속에서 그것만 보았다면 미실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리라. 여성 상위 시대라 여권신장이다 해서 여성의 힘이 예전보다는 나아진 듯 보이지만 아직도 사회를 구석구석 요모조모 살펴보면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음을 직시할 수 있으리라. 이런 여성들에게 미실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행동으로 당당히 옮겨나가는 저돌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리라.
끝으로 여러 흥미로운 요소들로 가득찬 미실을 읽어나가면서 우리네 역사를 들여다보고 아는 일의 소중함까지 덤으로 느꼈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 거창한 바람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