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새콤달콤한 매화향이 느껴지는 소설 “미실” 표지처럼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요염하게 때로는 선정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초장에 있는 <<미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혈연 및 혼인 관계 참고표를 보면서 이런 엉터리빵터리 가계도가 어디있어하며 코방귀를 끼었었다.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가계도였던 것이다. 일부종사,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에만 흠뻑 젖어 있던 난 이런 가계도를 보자 반감이 일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픽션이구나. 어디 한번 작가의 상상의 날개속으로 빠져 볼까나하면서 읽기 시작한 소설 “미실”
초반에 가졌던 불쾌한 감정 탓에 소설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횟수보다 설레 설레 고개를 젓는 횟수가 많았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참내~ 한마디로 파란만장한 미실의 사랑 쟁취기구나 하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나. 그런데 표지 뒷장을 장식하고 있는 글귀들에 다시 한번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미실』은 우리 역사의 일부이면서도 우리가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냈다는 둥, 이 소설로 인해 미실은 천오백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한국 문학 사상 가장 개성 있는 여성으로 거듭 태어났다는 둥 작품에 대한 찬사부터 미실이라는 인물에 대한 찬사까지 잔뜩 늘어 놓은 것을 보니 엥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실에 대한 나의 희박한 지식에 문명의 힘을 가하기로 했다. 컴퓨터로 이곳저곳 검색해 보면서 미실이란 인물이 희대의 요부라고 일컫어지는 장희빈, 장녹수에 버금가는 인물이며, 양귀비보다 더한 매력을 발산하는 인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소설에서도 이런 미실에 대한 묘사를 곳곳에서 하고 있었지만 다만 내가 눈 감고 입 다물고 소설에 대한 반감에만 휩싸인 채 읽다 보니 모른 체 하고 지나 갔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려운 결심을 했다. 다시 한번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아직 위작논란이 일고 있는 화랑세기 속의 인물 미실이지만 그녀의 삶이 그러했겠거니 하는 믿음을 가지고 책을 재독했다. 처음엔 잘 읽혀지지도, 복잡한 가계도 탓에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던 인물들이 하나 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미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일깨워준 사다함부터 미실이라면 온갖 일도 마다않는 세종의 사랑까지, 나에게 어느덧 가슴저리는 애틋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미실의 자태에 멕을 못가누던 몇몇 사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미실에게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다시 한번 책을 읽고 나니 작품에 대한 반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런데 또 하나 가지게 되버린 반감이 있었으니 바로 주인공 미실에 대한 반감이다. 내가 반감을 갖게 된 이유가 마침 책 안에 있어 인용해 보았다.
‘여자들의 어리석음은 정작 투기라는 날카로운 마음 한 조각을 소유했다는 데 있지 않았다. 그것으로 세상을 베지 못하면 결국 자기를 베어 해치고야 마는 잔인한 외골수가 여자들을 패배하게 했다.’ (『미실』,44쪽)
투기, 사실 여자로서 치졸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미실에게 질투가 나는 건 사실이다. 미실에게 여자로서 질투가 나게끔 향기를 입혀주고 색을 더해 준 작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작가도 소설을 쓰는 내내 미실에게 지독한 질투심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미실 ...제목에서 새콤달콤한 매화향이 느껴지는 소설. 표지처럼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요염하게 때로는 선정적으로 다가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