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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
22 |
작성자 : |
동그라미 |
2005-05-22 |
조회 : |
9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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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자, 그 이름은 ‘미실’
김대문의 ⌜화랑세기⌟ 속에 묻혀 있던 신라 여인 미실을 만났다.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이란 의미를 갖고 태어난 미실의 한 평생을 따라가면서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왕과 혼인할 여자나 색공(色供)할 여자를 배출하기 위한 모계혈통으로 이어지는 혼인제도가 그러하고, 다소 생소한 단어의 나열이 글을 읽는 내게 낯선 이방인 취급하는 듯 했다. 거기다가 남녀가 사랑을 배우고, 익히고, 나누는 장면들은 혼자서 몰래 음란물을 봤을 때처럼 갈증이 났다.
사랑을 하고 버림을 받기도 반복하였지만 이조시대 4대째 왕 세종과 정식 혼인하여 그야말로 굴곡과 희비의 쌍곡선이 엇갈리는 삶의 주인공, 그 누구 다른 사람도 아닌 미실.
뛰어난 미색과 타고난 총명함과 탐구심으로 ⌜현녀경⌟ ⌜소녀경⌟을 읽어 익히는 것은 물론, 외조모 옥진으로부터 아양을 떨어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미태술과 가무의 비법 등등을 전수받았다.
훗날 막내아들 보종이 전한 ⌜미실궁주사기⌟의 자료가 되는 미실의 수기가 칠 백 권이 쓰였다고 하니 과히 신화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린 날 미실은 끝없이 태어나고 죽는 자연을 벗으로 섬기고 축복하는 법을 익혔고, 여러 재주와 남녀간의 운우를 배워 읽힌 것도, 한방과 민방을 통튼 중초약 중에서도 춘약을 정제하는 법을 배운 목적은 오직 한가지였다. 어머니의 어머니 역사로 이어진 오도에서 옥진으로, 옥진에서 묘도로, 묘도에서 미실로 이어진 피의 숙명이요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미실은 한민족 고유의 사상인 하늘과 땅과 사람의 천‧지‧인의 조화를 강조하였고, 사랑의 황홀과 상실이 다르지 않고 기실 하나와 같은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여신이었다.
시어머니 지소태후의 질투심에 쫓겨나기도 하고, 금란지교를 꿈꾸던 미실의 바람을 뒤로 하고 전쟁터로 떠나버린 사다함과의 슬픈 사랑도 바람결에 실어 보낸다.
동정남 동륜태자를 유혹하고 또 진흥제의 여자가 되고, 일생에 단 한 번도 여인의 부대낌을 느껴보지 못한 박운한 낯선 사내와의 실로 충격적인 장면.
사다함의 이복동생 설원을 완전한 남자로 이끌고, 미실의 나이 서른에 열세 살 진평제를 안고 쓰다듬어 국사를 이끌어 갈 사내로 만들기까지...
복숭아 꽃잎에 세수하며 태어난 미실, 열네 살에 처음으로 세종의 여인이 되면서 8명의 아이를 낳았고, 혈통을 잇기 위해 기꺼이 미소년들의 색공이 되어주고는 말년에 영흥사 스님으로 세상을 마치던 날도 오늘처럼 처연한 봄날이었다.
천오백여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삼한 통일을 이루고 조선왕조를 거쳐 밀레니엄 새천년을 맞은 오늘, 나는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두 딸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평소 잘 몰랐던 관심 밖의 고대사를 일깨워 주신 김별아 선생님께 고마움을 표하며 옛 여인들의 모습을 통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다시 한 번
재조명하는 시간으로 남기고 싶다.
2005. 5.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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