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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
23 |
작성자 : |
노디 |
2005-05-23 |
조회 : |
96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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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이 책을 산 날,, 난 미련스럽게도 이 책 제목이 마실인지 알았다. 옆집이나 가까운 곳을 놀러 간다는 의미의 사투리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사전에는 정확한 뜻이 나와 있지도 않았다. 남편은 미실이란 강원도 사투리가 있다고 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가 쉽게 얘기라는 이 녀석아, 란 비슷한 뜻의 가벼운 욕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 책 제목은 미실이다.<화랑세기> 속에 기록된 역사 속의 인물로 6세기 후반 신라 시대를 뒤흔들어 놓았던 여인이다. 어디까지가 화랑세기 속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어디까지가 작가가 지어 낸 이야기인지 경계를 모호하게 하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그리스 신화를 접했을 때의 애매한 마음이 되어 갔다. 동서를 막론하고 성(姓)이란 중요하구나! 세계는 남자가 지배하고 그 남자는 여자가 지배한다는 말이 맞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신사임당이나 황진이 같은 여인만 있는지 알았는데,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면서 정치적 욕심도 부리는 드센(?) 여인도 있었구나! 마지막 장을 넘길때까지 내 머리 속은 의문부호로 가득했다.
역사책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지만 미실 가문의 색공지신은 처음 들어 본다. 문,무로 왕에게 충성을 하는 사람만 있는지 알았는데 색(色)으로 섬기는 가문도 있다니, 놀랄 뿐이다. 그 가문에서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외할머니 옥진의 영향을 받아, 미실은 완벽한 여인이 된다. 첫남자는 세종은 (조선시대의 세종대왕과 이름이 같다) 미실이 선택한 사랑이 아니었지만 편안한 반려자가 된다. 그 이후로 미실이 선택한 사랑과 자신의 위치를 굳히기 위한, 자신의 임무인 색공을 삼대에 바치는 미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운명을 바꿀 수 없다지만, 능동적으로 자기 생을 살아 온 미실을 통해 고조선 아니 그 오랜 옛날 있었다는 모계 중심의 사회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한다. 나이 든 미실이, 머리카락이 빠지는 미실이 조용히 봄을 따라 사라지는 것으로 화려한 인생은 끝이 난다.
자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좌절하지 않고 속으로 삼키는 여인, 색을 무기로 권력을 잡고 흔들 수 있는 여인, 자신의 원초적 욕망을 참지 못해 근친상간을 하는 여인, 자신을 스쳐간 많은 남자를 모두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여인을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성은, 특히 여성의 성은 억압되어 왔는데, 그 옛날의 여인은 자기 스스로 성을 힘으로 이용할 줄 알았다고 하니 놀랄 일이다. 유교적 금욕주의가 지배하기 이전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자유로운 성, 그 중심에 선 여인이 미실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 내내 일어났던 불안감의 원인을 이 책을 덥으면서 알 수 있었다. 미실과 난 같은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 여인처럼 내게도 나이 먹음이 세월의 흐름이 나쁘게만 느껴지질 않기를 빌어본다. 미실은 오랫만에 만나는 특별한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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