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그녀의 속내를 끝내 알 수 없었다. 신라 왕조 3대에 걸쳐 색사로서 궁주로써 황제를 모셨던 그녀는 지금 우리 시대 누구보다 앞선 ‘인간’이었다. 여자도 후궁도 신하의 위치도 아닌 ‘미실’ 그 이름으로 온전할 수 있었던 그녀. 존재감 하나로 신라를 뒤흔들었던 미색만은 아니었다. 1,000년의 지난한 세월을 이어온 히말라야 눈보다 냉혈한이고, 열대야의 폭염보다 뜨거웠던 그녀의 삶이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이유.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고뇌하는 인간이었던 그녀를 세종이나 진흥제, 설원랑처럼 사랑하게 되었다. 미실과 함께 한 일주일은 참 달콤했다. 세종이나 진흥제가 내 앞에 살아 숨쉬며 나를 사랑해 주는 것처럼, 가슴이 뛰고 설레었다. 미실을 알게 된 건 독특한 만남으로 그 생각만으로 나를 미소짓게 하는 지인을 통해서였다. 쇼킹할 것 하나 없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익사 직전 미실을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은 눈이 뒤집힐 만한 말 그대로 ‘사건’이었다. 세상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나 더불어 한없는 구속을 즐기는 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내 적지 않은 나이와 부족한 시간과 어려운 경제형편을 조건들 속에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처럼 나를 옭죄여 오고 있었다. 구름한 점 없는 사막에 선 나에게 욕망에 대한 갈증을 단숨에 날려버릴 나의 오아시스. 미실. 역사적인 인물이나 선구자적인 여성으로서의 그녀의 캐릭터보다는 사랑을 알고 인간적이며 세속적이었던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의 할머니 옥진의 견고하고 당당한 느낌이나 어머니 묘도의 다소 우직한 듯 순수한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미실의 매력(魅力)을 따라올 순 없었다. 매력(魅力). 말 그대로 귀신도 홀릴 수 있다는 그 힘은 어쩌면 인간세를 벗어난 신의 영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이 없었고, 그녀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 없었으니 진정한 신라통일은 그녀를 통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녀의 최후가 너무도 밋밋하고 간이 덜 들 생선처럼 비릿했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아름다운 그녀였으니 끝도 그렇게 화려했으면 좋았으련만. 너무 성급하게 그녈 떠나보낸 게 아니가 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인연이라는 것이 거기까지였는지 모르나 그래도 그녀가 그립다. 온전한 사랑은 단 하나의 사랑일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사랑도 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서 잊혀진다면 결국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단 말인가? 사랑에 대한 수많은 물음들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미실의 삶은 완전한 자유와 내면을 추구했으나 그 끝이 정말 그러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눈을 감을 때 진정 평온했었는지, 후회가 없었는지 절대 알 수 없다. 다만, 이 한 평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갈 때, <사랑> 오직 이 두 글자 남아 있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