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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
37 |
작성자 : |
초지일관 |
2005-05-31 |
조회 : |
104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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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너무도 환상적인 이름, 미실...
'만날 날수로 헤아리리까, 오랜 겁의 인연을 말하오리까?'
서로가 지닌 사랑의 아픈 상처를 더 큰 그리움으로 승화시켜 나눈 미진부와 묘도와의 그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이름하여 미실이라 하였던가...
천 오백년의 시공을 초월한 미실과의 연정이 이 때부터 내 마음속에 싹터기 시작하였다. 그녀에 대한 알지 못할 애틋한 그리움이 물밀듯이 다가와 내 마음을 사정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뜨겁고 더욱 진하게...
그리하여 미실이 화려하고도 어두운 침실속에서 세종과 사다함과 설원랑과 동륜과 금륜과 진흥제와 그의 온 영혼과 육체로 달구워진 사랑의 기교와 방중술로 환희불을 태울 때, 나의 정신과 육체도 함께 흐늘어 지고 있었고, 어쩌면 내 욕정마저 그 속에 빨려 들어가는 듯 하였다.
그러나 결코 한 낫 질투심이나 분노함은 추호도 없었다. 오로지 미실과 함께 기뻐하였고, 함께 즐기었으며,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도 함께 나누었을 뿐이었다. 볼 수도 없고, 또한 본 적도 없는 그녀지만 꿈 속에라도 나타날 것만 같았고, 한 번만이라도 그녀의 탐스럽고 매혹적인 알몸둥이를 품에 안아볼 수만 있다면 하는 너무도 부질없는 상상의 나래만 나붓껴 볼 뿐이었다.
지나친 탐욕에 집착하고 있다고 욕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미실 그 자체의 운명적 삶이 그런 욕정의 발로에 대한 죄의식이라든가 현대적 윤리도덕의 잣대를 초월한 인간 본성에 충실한 자연 그대로의 들풀처럼 살아 갔기에, 나 또한 천 오백년의 시간을 거슬려 그녀의 그 화려한 삶에 함께 어울려 그녀만의 세계에 흠뻑 취하고 싶었다.
작가의 뛰어난 탐구정신과 화려한 문체속에서 황홀한 사랑의 몸짓을 안고 홀연히 우리에게 다가와버린, 어쩌면 자칫 기나긴 역사의 뒤안길에서 세월의 먼지에 쌓여 영원히 잠들어 버릴지도 몰랐을 보석처럼 빛나는 고색찬연한 신라의 여성, 미실. 그녀의 부활은 미래에의 위대한 여성의 아름다움과 잠재력의 부활을 예고한다고 주장해도 어느누구 토를 달 자 없으리가. 미실에 대한 작가의 정성은 너무도 눈부시어 한 올 한 올 진주를 엮 듯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아름답게 그려나갔고, 그 밑바탕에 깔린 인생의 심오한 깨우침과 번득이는 깨달음은 중국 고사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듯 하여 더욱 그 깊이를 더하게 해 주었다.
단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미실의 그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사랑과 몸에 배인 타고난 지적매력이 자칫 권력욕에 휩쌓인 음모와 결탁하여 너무 천박한 욕정으로 치부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고, 보다 폭넓은 신라의 세계를 비추는데 너무 인색해 버린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남기게 했다.
한편, 미실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인생의 극적인 전환점을 보다 드라마틱하게-높고 낮음과 귀하고 천함의 경계를 극적으로 무너뜨리고 싶었던 작가만의 독특한 상상스케치 기법속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옥의 티라고 보아야 할지, 아니면 인생 최고의 깨달음이라고 보아야 할 지 분간하기 어려운 혼란스런 장면이 눈앞에 불쑥 다가왔다. 옥진이의 죽음앞에 인생의 허무를 느낀 미실이 방황하다가 목격한, 외딴 초막집에서의 더럽고 추잡스런 몰골로 스스로에게나 세상으로나 이미 버림바 되어 마땅한, 그래도 살아 꿈틀거리는 남성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의 욕정을 가누지 못한 처절한 자위행위 앞에 미실이 보여준 충격적인 오럴섹스 장면은 작가의 의도가 어찌됐던 간에 너무도 노골적이면서도 지나친 성묘사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작가의 거침없는 표현기법을 높이 평하고자 하여도 이건 아니다 쉽다. 참으로 참담한 표현기교 앞에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인간의 모든 사랑에 관한 행위가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다. 또 그 행위를 있는 그대로 실제 장면처럼 잘 묘사했다고 해서 찬사를 받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이 장면이후 나는 내내 불쾌했고 더러운 구역질마저 일렁거렸다. 그 이전 미실에게 느꼈던 모든 사모와 연정, 청순하고도 비단결 같이 아름다운 그리움과 억제키 어려울 정도로 끊임없이 넘실대던 탐심마저도 일순간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 이 비린내나는 사랑의 허무함이여!
하여도, 미실을 통해 던져준 신선한 충격과 진한 감동은 오래토록 잊지 못할 여운으로 내 마음속에 자리잡게 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나 미실의 마지막 여생은 너무도 서글프고 애처로와서 눈시울마저 붉혀야만 했다. 그 순간 자칫 잊고 있었던, 아니 차라리 잊어버리려 했었던 그녀의 화려한 사랑과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이 어느새 내 가슴속에 소리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숨길수 없는 애틋한 연민의 정으로....
미실의 사랑은 물앵두처럼 탱탱한 설레임으로 우리곁에 살포시 다가와 바람결에 흩어지는 붉은 꽃잎처럼 그렇게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듯 또다시 우리곁에서 조용히 사라져 갔다.
아, 이룰 수 없는 천오백년의 시공을 넘나들었던 꿈결같은 사랑이여!
그러나 미실, 그녀의 매혹적인 미소와 농염한 몸짓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영혼과 육체속에 깃들어 나의 사랑을 더욱 뜨겁게 불태워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여 미실을 만난 나는 예전보다 더 행복한 남자가 되었고 적어도 미실은 나의 사랑속에서는 언제나 살아 꿈틀거릴 것이다.
...미실을 내 가슴속에 안겨준 김별아님께 더없는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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