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문은 <화랑세기>를 통해 신라의 한 여인, "미실" 이라는 등불을 켜놓았다. 그리고 지금 김별아는 소설 <미실>로 이 휘황찬란한 등불을 흔든다. 우리가 어디론가 거침없이 달려가도록..
... 미실은 어머니의 법칙으로 정치하였다. ... 미실에게 감염된 채 질병처럼 앓아온 사랑들. ... 그들은 마치 맹수처럼 으르렁대며 서로 깊이 즐겼다.
남과 여의 성이 합집합하고 교집합하는 듯 치열하게 어울린다. 이 어울림의 배경은 고대 신분 사회의 한계인 혈통주의의 단단한 성벽 안이라는 점은 다소 아이러니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소설의 이런 얼개를 올라서게 되면 새로운 볼거리가 있다. 기나긴 우리의 역사가 숨겨뒀던 끔찍한(?) 남녀의 조화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인간이 삶을 이어가는 변함없는 원리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하는 푸른 기운도 있고, 시간과 공간의 모든 상황을 장악해 나가는 신라의 근원적 힘이 새로운 각도에서 말달려 오는 등등..
미실의 아름다움이란 길들여진 미관으로 불안해진 나에게는 몹시도 거칠게 다가왔다. 닫힌 문틈 좁은 사이로 희끗대고 있는, 등 굽은 나의 성적 미관을 무차별로 부수는 작가의 추궁은 나에게는 너무도 거세기만 하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 이 시대로 힘차게 살아갈 것을 요망하는 희망으로 밀려온다.
미실의 삶이 나로 하여금 블랙홀같이 저항할 수 없는 빠짐에 들게하고, 오늘의 삶을 새롭게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