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 번호 : |
48 |
작성자 : |
건빵선생 |
2005-05-31 |
조회 : |
26600 |
 |
붉은색 표지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책.
옥진, 묘도 그리고 대원신통을 잇는 신라시대의 요부. 미실.
몇 장을 넘기자마자 등장하는 인물들의 혈연 및 혼인 관계 참고표가 나온다. 이리저리 얽혀있는 복잡한 표를 보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난 책을 읽는 도중이라도 항상 앞에 있는 참고표를 보고 이해를 하고 넘어갔다. 나오는 사람도 많고, 미실을 거쳐 간 남자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이 표가 없었더라면, 나는 인물의 관계를 이해하느라 고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책의 내용이 묘사적이면서도 직설적이다. 미실은 야한 책이라 해도 그릇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미실의 행위가 야한 것 하나로 치부될 수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세종..어쩌고 보면 책의 주인공 중에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종은 미실을 사랑했다. 물론 미실도 세종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그를 권력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미실이 지소태후와 대원신통 권력을 위해 계략을 짜고 동륜과 진흥제 그리고 금륜과 진평과 사통관계를 맺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뇌물까지 서슴없이 주고, 동륜의 죽음으로 의심을 받게 되자, 손수 궁에서 나와 다시 권력을 잡을 때까지 기다리며 자신의 것이 있을 때는 확실하게 누리며 물러날 때는 순순히 물러날 줄 아는 미실의 철저하게 계산된 일들이 때로는 소름끼치기도 했다.
미실은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신라시대 국사책과는 뭔가 다른 미실의 내용은 새롭고도 신선한 충격을 내게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유교사상으로 인해 가부장제가 생긴 조선시대 이전의 신라시대의 여성의 사랑과 삶과 권위를 누리기 위한 욕심들을 바로 옆에서 들여다보듯 세부적으로 묘사해 놓았다. 그리고 글마다 바뀌는 시점도, 빠른 전개도 흥미로웠다.
평생 짝사랑만 하는듯한 느낌으로 미실의 곁을 맴돌며 이용당하는 세종의 마음이 내게 전해지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웠으며, 한번 권력의 맛을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고. 온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 보며 고개를 숙이니 그 권력을 놓기 싫어하는 미실의 욕심과 한편으로는 자신의 대원신통의 혈통을 이으려는 강한 열망이 그저 하루하루를 나태하게 살고 있는 나와는 너무 달라 보였다. 미실은 색공으로 신라라는 한 나라를 흔들어 놓았으며, 권력을 쥐었다.
그리고 미실을 너무 사랑하는 남자들. 물론 미실의 빼어난 외모를 사랑했을 수도 있지만, 한마디로 미실의 테크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나 과거나 여자들의 현란한 테크닉에는 맥을 못 추리는 것이 남자인가보다.
미실은 그저 다른 요부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미실은 미색을 갖추기도 했거니와 글쓰기와 정치에도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본디 요부에게 빠진 왕들은 나라를 망하게 하지만 미실은 그와 달리 오히려 나라를 부흥시켰다. 화랑제를 폐지하고 원화를 만들고 또다시 원화를 폐지하고 화랑도를 부활시키는 등의 자신이 이로우면 이로운대로 권력을 누리고 조금 불리하다 싶으면 재빨리 발을 빼버리는 현명함.
지금 이 시대의 미실 같은 현명한 국회의원이 있었다면, 우리 국회의 모습은 조금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끝부분에 미실은 병에 걸리게 되지만, 그 병을 대신해 죽음을 맞게 되는 사랑하는 사람 설원랑이 곁에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열녀들이 남자를 사랑해 상사병을 앓는 일이 많았다면 미실이 사는 신라시대에서만은 그 반대였던 것 같다.
평생을 뭇 남성들의 눈길과 총애를 받으며 살던 미실은 죽음이 다다른 나이에도 곁에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들의 자존심은 없다.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있고 싶고 사랑을 나누고 싶은 어쩌면 남자들의 본능을 잘 알고 잘 이용한 미실이다.
자신의 병을 대신해서 떠난 설원랑의 관 뚜껑을 덮으며 미실은 “홀로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곧 그대를 따라 하늘로 가리라”라는 말을 속삭이고 미실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젊은 시절. 많은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미실도 결국은 늙게 되고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어쩌면 허무한 것이 세상의 이치일 지도 모른다.
진흥제가 죽음을 앞두고 사도황후가 진흥제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떨어진 꽃은 나뭇가지에 다시 올라 피지 못한다더니, 한번 지나간 청춘은 돌이킬 수가 없구나!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씩씩하게 천하를 호령하시리라 하였더니, 이젠 저무는 생애를 위로하며 돌보는 수밖에 무슨 방도가 더 남아 있으랴...’
화무십일홍. 늘 천년만년 신라시대의 왕으로 군림할 것 같던 진흥제도, 항상 남자들의 사랑을 받고 영원히 아름다울 것 같던 미실도 결국 세월 앞에서는 가냘픈 한 송이 꽃이었다.
신라시대. 자신의 권력을 당당하게 찾으려 했던 미실.
이 책을 읽는 동안 뭔가 후련함을 느꼈다. 내가 실제로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겠고, 현시대에서는 사실 일어날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현대 여성이 배우고 싶어 하는 어떤 하나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남자를 깎아 내려 평등해지려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권리를 찾아 높이는 것 말이다.
역사 속의 실제 인물이었던 지금은 흔적조차 남자있지 않은 미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미실’ 책 한권으로 빛을 발할 것이다.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