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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
49 |
작성자 : |
올페 |
2005-05-31 |
조회 : |
267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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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의 향연이 눈부시더니, 어느새 바람결에 여름이 묻어나는 요즘이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는것 같아 마음한곁이 모래알빠지듯 공허해지곤 했다.
사랑이 무엇이더냐, 인생이 무엇이더냐
공허함과 무상함이 비릿한 눈물한자락 떨구는 세월, 그 어느결에 다가온 책이 있었다.
세계문학상 당선작 <미실> 바로 그 책이다.
김별아님의 <미실>은 강렬한 책이다.
강렬함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부족하다. 찬라의 인생을 살고 갔지만, 역사의 한자락에 진하고 붉은 이름을 새기고 간 미실의 이야기, 그것은 강렬함을 뛰어선 그 무엇이다.
그것을 표현할 단어를 나는 찾지못했다. 아마 내 생이 다해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김별아님이 보여준 <미실>은 우리 언어의 혁명이다.
'아~ 이렇듯 아름다운 단어가 우리 말에 존재했던가? '
형형이 살아 숨쉬는 단어를 만날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펄펄 살아뛰는, 땀내음이 물씬 풍겨나는 우리말의 향연, 그것이 <미실>에 담겨 있었다.
또한 사랑의 강렬함, 삶의 희노애락, 권력에의 욕구, 인간사의 가닥가닥 영커붙어있는 인연의 끈- 이 모든 것이 다 담겨있었다.
화랑세기 속의 여인 미실은 이런 강렬함을 지니고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미실! 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야”
라는 외할머니 옥진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오는 것만 같다.
그것은 청춘의 열병같은 혼돈에 빠진 미실을 일으켜세우는 외침이었으리라. 청춘의 열병은 겪은 사람은 존재의 혼돈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 시절을 이겨내는 힘은 바로 자기자신에 대한 존귀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린 미실은 자연에 동화되어 자라났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미실은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속으로 들어온 미실, 그녀에게 기다리는 것은 사랑이었다. 위험스러울 만큼 미색을 지닌 젊은 미실은 세상을 몰랐다. 순수하게 세상을 믿었기에 버림받은 아픔은 더 크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위기에 닿을때마다, 미실은 피하지 않았다. 영특한 그녀,미실은 진리의 열쇠를 이미 지니고 있었다.스스로를 지킬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임을 말이다.
또한 육체보다 마음의 중함을 미실은 보여준다.
색의 근본인 마음에 대해 옥진과 나누는 대화는 그것을 시사하여 준다. 마음은 얼마쯤 비어 있어야 한다는 말. 마음이 열려야 몸이 열린다는 말은 어쩌면 현 세태의 가벼운 사랑에 대한 일침처럼 여겨진다.
그 누구보다 많은 남자를 사랑했던 미실이었지만, 첫 마음을 주었던 사다함. 그와의 사랑은 아릿하고 가슴저미는 아픔을 보여준다. 마치 첫사랑의 상처를 대변하여 주는 것만 같다.
사랑, 그 한단어에 모든 것을 걸었던 여인이 미실이었다. 미실이 선택한 것은 자기자신을 사랑한 일이었다. 세종의 여자가 되고, 지소태후에게 내침을 당한후 미실에게 다가온 시련은 그녀를 더욱 더 강하게 만들었다. 미실은 아픔과 굴곡을 겪으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리하여 미실은 한 시대를 호령하였다. 때로는 당돌하게, 대담하게 그녀는 세상을 지배하며 그녀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켜나갔다.
그런 그녀앞에 수많은 남자들이 지나갔다. 황제에서부터 동궁, 미천한 존재인 추물까지... 그러면서 그녀는 깨닫는다. 천함과 귀함의 경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을 말이다. 발가벗고 숲을 내달렸던 유년의 기억속에서부터 또아리 틀고 있던 것은 죽음과 삶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누구나 존귀하며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 그리고 생과 사 역시 인간의 일부라는 것이다.
미실의 결말은 불문의 귀의,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실은 금은보화, 귀한신분은 훌훌 던져버렸다. 젊은 날의 집착을 생각한다면 이상해보일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미실이기에 가능할 일이었다.
움켜쥐는 것보다 던져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미실은 그런 인간사의 욕구로부터 벗어난 여인이었다. 죽음마저도 미실답게 선택했던 그녀였기에 향기로운 것이다.
영겁의 역사속에 숨죽여 살아왔던 그녀가 뚜벅뚜벅 내 가슴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를 통해 나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을 생각했다. 그녀의 숨결을 가슴깊이 받아들이며 내 삶을 돌아보았다.
미실은 역사를 뛰어넘어 이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외친다. 자신을 사랑하고, 그리하여 자기자신을 자켜나가라고.
피맺힌 외침은 나의 가슴에 새순이 파릇파릇 돋아나게 하였다. 차가운 땅속에 갇혀버렸던 생에의 희망한자락, 그것이 나를 눈물겹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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