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역사 다시보기에 대한 과제를 찾으려 인터넷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중 무슨 말인지 모를 낯선 단어를 발견하고 알 수 없는 바다생물을 보듯 말랑말랑한 그이름을 살짝 만져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제야 미실을 만나게 되었다. ‘미실’문득 도드라져 보이던 그 이름이 여자이고, 그것도 한 나라의 최고 권력인 왕권을 쥐락펴락했던 인물이었음을 알게되어 나도 모를 묘한 웃음이 지어졌었다. 그리고 지금 그 낯설었던 이름의 주인공을 내안에 반갑게 맞아들인다.
연꽃은 깨끗한 물에서는 살지 않는다. 더럽고 추해보이는 물에 살지만, 그 더러움을 조금도 자신의 꽃이나 잎에는 묻히지 않는다. 또한 연꽃은 연밥이라하여 꽃이 핌과 동시에 열매가 그속에 자리를 잡는다. 즉,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수단이며 열매의 원인인 것이다. 꽃잎이 크고 많으며 아름답기때문에 하늘의 보배로운 꽃으로 간주되는 연꽃. 불꽃처럼 때로는 횃불처럼 고된 타오름으로 일생을 ‘자신’이라는 무기 하나로 당당히 전력해 나갔던 미실의 생애를 접하며 나는 그를 연꽃으로 비유하고 싶어졌다.
미실, 진흥·진지·진평왕과 태자, 풍월주 등에 이르기까지 신라시대 왕실과 화랑도를 종횡무진 주무르며 권력을 손에 쥐었던 여인. 천년제국 신라사대에 이렇게 용감무쌍하고 여성성을 과시하여 파괴적인 힘을 창조한 여자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보이지 않는 역사가 이 책에도 있었다.
첫사랑의 아픔을 시작으로 남편 세종을 발판삼아 권력의 소용돌이로 발을 들여놓으며 더 큰 권력과 자꾸만 피어오르고 싶어 용암같은 뜨거운 욕망과 화산같은 질주로 대를 이은 왕권의 손아귀 놀음에 일생을 취하고 잃기를 반복하며 자신을 사랑해 온 정렬과 파괴의 여인. 하지만 그녀는 단지 빼어난 ‘여자’라는 무기 하나로 자신의 욕망과 권력을 거머쥔 것은 아니었다. 학덕과 지혜, 끊임없는 자기단련과 선견으로 투쟁에 맞써 자기를 지키기 위해 모든 시간들을 준비해 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렀을 때엔 사랑으로 모든 아픔과 상처를 대신해 줄 설원랑이 있었던 평범한 여자이기도 했다.
그녀의 생은 권력과 애욕으로만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엔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고 깨달아 떠나야할 때를 아는 사람.
사랑의 여신이라고 부를만큼 그녀는 누구의 침범도 허락지 않는 뜨거운 생애를 만들고 갔다. 가족적 제도로 삼국을 통일하였다는 포괄적인 교과서적 지식을 벗어나기에 충분하게 ‘미실’의 모습은 달지고 풍지게 살아 움직인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내 뒤통수를 때리고 비웃고 깔깔대며 감추어져 있는 본능을 탓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거침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과연 그러했을까... 작가의 말대로 마음대로 끌고갈 수 없는 이야기인 것만은 확실하다. 여성정치참여가 실현되고 여성의 지위향상이 한나라의 번영의 척도가 된 지금에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의식엔 얇지만 질긴 의식이라는 막이 덮여 계속해서 예고없는 충격을 가했다. 신이 만들어준 정체와 본능. 여성의 권력획득이 남성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함께 공존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야 함을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미실이 궁금하듯...김별아도 궁금해지는 초여름 저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