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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
52 |
작성자 : |
정국진 |
2005-05-31 |
조회 : |
26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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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수 없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인문학에 이렇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미실을 복원하는 데 도움을 준 인문학만큼이나 사라질 수 없는 중요한 것은 인문학이 복원하는 대상 바로 '인간'이다. 그리고 소설은 인간을 그려내는데, 특히 저자 김별아가 그려낸 인간상은 바로 1400여년 전의 미실로 대표되는 '여인'이다.
팜므파탈이 아니다. 요부라고도 하지 말자. 바로, 여인이다. 그녀의 생애를 더듬어 보기 전부터, 수많은 매체들이 친절하게도 그녀를 우리 역사의 전형적인 팜므파탈이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팜므파탈이란 어떠한가. 이 망할 놈의 여편네! 라는 외침과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어르신의 말씀 속에 팜므파탈이 있다. 물론,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하여 신라 사회를 주름잡았다는 점을 보면 미실이 팜므파탈의 면모를 일정 부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기에 앞서, 우리가 팜므파탈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일반적으로 가지는 편견부터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미실이 처음부터 권력을 탐하였던가. 그것이 아니면, 미실이 본디 성욕에만 눈이 멀었던가. 둘 다 아니다. 애당초 그녀의 가계는 정치권력자들에게 섹스와 후계자 출산의 임무를 가진 '색공' 가문이었고 미실은 이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 사실, 팜므파탈이기에 앞서 여인이었던 미실이었기에 사다함과 나누었던 순수한 사랑도 가능했었다. 하지만 권력 탓에 사다함과 이별을 하게 된 그녀는, 그녀의 순수한 사랑을 좌절시킨 권력에 대한 복수심에 그 권력 자체를 받아들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했던 숱한 일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는 선택으로 운명 속에 내동댕이쳐져야 했던 기억이 그녀를 더욱 냉철한 권력가로 만들었다."
여성을 혐오하는 관점에서 미실은 여전히 팜므파탈일 수밖에 없다. 남성의 권력 추구, 혹은 심지어 성적 욕구까지 정당화하면서 여성의 비슷한 욕구는 왜 무시하는 걸까. 자신을 희생시켰던 권력에 수동적으로 당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 극복해 냈다. 색공 가문이기에 앞서 여자였고, 여자이기에 앞서 인간이었다. 신라 시대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유교와 기독교의 영향으로 잊을 수밖에 없었지만, 사라질 수 없는 것은 분명히 있다. '미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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