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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
55 |
작성자 : |
카이로스 |
2005-06-01 |
조회 : |
25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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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는 [미실]을 통해 가부장적 틀로부터 자유로운 하나의 개성적 여성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각 시대의 여성상은 남성상과 동전의 양면의 관계로 맞물려있다. 우리 시대의 여성상은 지배자로서의 남성상 아래에 놓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여성상은 가부장적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황금새장에 갇히기를 자원하는, 즉 가부장적인 남성의 시선을 내면화한 그녀들의 모습을 결코 미실의 자아상과 같을 수 없다.
그런데 김별아는 독립적 여성상의 재시를 위한 중심소재로 성애를 다루었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성윤리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성 윤리는 그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비추어준다.
남성이 한 가정의 가장이기에,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되는 가부장적인 시각에 따르자면, 여성의 성적 자유는 용납될 수 없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유일하게 불륜을 민법이 아니라 형법으로 통제하는 사회이다. 이것이 겨냥하는 것은, 물론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많은 남성들이 음주가무 속에서 불륜을 저지른다).
이러한 사회에 김별아는 의도적으로 도발을 가하고 있다. 물론 김별아가 원하는 것이 분방한 성생활에의 독려는 아닐 것이다. 그녀 자신이 ‘작가의 말’에서 미실을 가리켜 “내가 훈련받은 도덕을 간단히 뛰어넘는 여인”(6쪽)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성애를 묘사하는 그녀의 문체는 직설적이지 않다. 즉 한 시대의 성윤리의 틀을 자유로이 벗어버리라는 요구가 아니라, 그 성윤리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여성상과 그에 기인한 통제를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작가의 말’에서 인용하자면, 미실은 “자신의 부여받은 시대를 가장 충실하게 살아간 배덕자”(6쪽)이다.
김별아가 소설에서 드러내는 욕망의 진솔한 긍정은, 자유로운 주체를 상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체의 자유로움은 힘(권력)으로 구성된다. 미실은 “점차로 권력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갔다.”(179쪽) 그녀의 “독력”(185쪽)은 “누군가를 제압하고 ... 누군가를 선택하”(179쪽)는 것으로 드러난다. 즉 주체는 관계 속에서 그 자유로움을 증명한다.
그러한 자유로움의 대가는 무엇인가? 바로 “고독”(310쪽)이다. 주체가 독립적 자아로서 그 힘과 자유를 향유하는 결과로 “막아 세울 수 없는 도저한 시간의 흐름, 그 속에서 고독은 어떤 예외도 없이 깊어지기 마련”인 것이다. 이는 자아의 실존을 극한까지 추구한데서 겪는 고통을 감수하는 시지프스의 영웅적인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만일 나의 판단이 옳다면, 김별아가 제시하는 여성상은 곧 남성상으로서도 타당하다. 그녀의 여성상이 옳게 수용된다면, 그 때에는 여성상과 남성상이 대등한 관계에 놓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여성상과, 그리고 이에 상응한 남성상에 기반하여 살아가는 참된 동반자적 관계가 수립되는 그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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