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어머니 돌아가신 뒤, 한 문장도 제대로 완성 못하는
‘실서증’ 갑자기 찾아와… 이 악물고 분투 끝 소설 완성
“소설은 자본 없이도 완성할 수 있다는 게 매력”


어머니의 평생 소원이 소설가로 등단하여 단행본 한권 출간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써놓은 단편소설을 보니 자기가 써도 그보다는 나을 것 같아 1년에 한두 편씩 습작을 시작한 것인데, 정작 2004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한 문장도 제대로 끝까지 완성시켜내지 못하는 마비 증세가 찾아왔다. 서술어나 조사가 제대로 안 붙고 철자도 전혀 엉뚱하게 구사됐다.

성균관대 국문과 시절에는 제법 매끈한 문장을 구사했다고 그는 자부했다. 모친의 타계 직후에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진 내상이 실서증으로 드러난 모양이다.

결국 소설로는 안 되겠다 싶어 영화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곽경택 감독과 안권태 감독 아래서 연출부 생활을 하면서 시나리오도 썼다. 시나리오라면 주로 행동을 지시하는 단문으로도 가능할 법했다. 한데 시나리오는 철저하게 기획 작품이어서 자신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쓰지 못하는 답답함이 컸다. 소설은 자본이 없어도 최소한 완성은 시킬 수 있는 장르여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엎어지는 일은 없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그는 실서증을 극복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하면서 2년 전 첫 소설 ‘컨설턴트’를 완성시켰고 그 작품이 ‘문학동네 소설상’ 최종심에 올랐지만, 그 해 ‘문학동네’는 당선작 없음을 선언했다. 절치부심 끝에 다시 고치고 줄여 세계문학상에서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2회 세계문학상 차석이었던 ‘캐비넷’이 이듬해 문학동네 소설상에 당선된 걸 보면 문운이라는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직접적인 살인을 하지는 않지만 사실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행동들 때문에 어딘가 주변부에선 죽음을 당하거나 기아에 시달리는 모습을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사회 구조에서는 ‘어쩔 수 없다’거나 ‘아무 책임이 없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건지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컨설턴트’의 주인공은 킬러다. 그 킬러는 직접 살인은 하지 않고 암살 대상이 타살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죽은 것처럼 기획하는 일을 수행한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의 종착지는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흔히 변명하는 ‘어쩔 수 없다’에 대한 통렬한 반박이다. 소설에서 킬러를 고용하는 건 ‘회사’인데, 회사란 정체가 불명한 이 사회 시스템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임씨는 ‘회사’를 소재로 3부작을 완성시킬 계획이다. 2부작 ‘문근영은 위험해’는 이미 써놓았다. 한 루저 캐릭터가 문근영이 스타로서는 너무 완벽한 게 이상하여 파고든 결과 그네를 국민여동생처럼 느끼게 만드는 모종의 정치적 음모가 있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미디어에 대해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다. 3부작은 ‘전락’이라는 제목으로 집필 중인데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장기를 활용하는 게 공리적인 행위라고 주장하는 한 의사와 사제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그의 상상력은 진중하면서 매우 발랄하다. 새로운 스타 작가 탄생을 충분히 예감케 한다.

“영화는 철저하게 보여주어야만 하는 데 비해 문학은 다양한 서술 방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단점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문학이 영화보다 훨씬 간결하게 접근할 여지가 많은 장르여서 오히려 작가로 하여금 어떤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 차원에서 쉽게 타협할 여지가 많은 편이지요. 하지만 개인작업과 단체작업의 차이가 너무나 명확한 데다, 영화는 자본이 투입되는 단계에서부터 이야기의 한계가 확실히 규정되기 때문에 문학의 자율성과 힘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작고한 어머니가 60년대부터 사서 모아놓은 책들을 어린 시절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했다. 글을 깨치기 전부터 증조할머니 무릎에 누워 이야기 하나씩을 들어야 잠에 빠졌다고 하니, 그는 천생 이야기꾼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셈이다. 그는 아직 미혼인데 “우리나라 직업 중에 가장 평균 연봉이 낮은 영화판”이 이유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려는데 그가 머뭇거리며 따라와 “어머니 이야기는 빼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가 재혼하셨는데 새어머니에게 누가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처음 만날 때부터 누선(淚腺)을 자극하더니 점입가경이다.

문학을 시작한 게 그 어머니 때문인데 거론하지 않을 수는 없고, 대신 당신의 그 말을 기사에 넣겠다고 답했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돌아서서 천천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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