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편 잡으면서도 꿈 놓지 않아… 문학은 내 인생의 전부”
"지방 작가 소외감, 수상으로 달래 행복 이름처럼 세상에 울림 주는 글 쓰고 파"


의외였다. 등단 20년차의 중견 소설가가 문학청년들과 똑같은 조건 아래 심사를 받는 문학상에 투고하다니. 그간 기성 문인들의 세계문학상 응모가 활발했어도 대개 등단 5년 이내의 신인이었다. 제9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자 박향(50)씨한테 던진 첫 질문도 그거였다.

“지방 작가들은 등단 연도와 상관없이 늘 변방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서울 중심 문단에서 항상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죠. 지방 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한 뒤 10년이 지나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 재도전한 사례도 주변에서 봤습니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소설가라면 대부분 ‘돌파구’를 찾기 위해 국내 최고 권위의 세계문학상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겁니다.”

박씨는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단편소설집 2권과 장편소설 1권을 펴냈다. 자연히 그의 이름 옆에는 ‘과작(寡作)’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하지만 일부러 과작을 선택하진 않았다고 그는 항변한다.

“모든 문화 분야가 다 그렇지만 문단은 중앙 집중이 특히 심해요. 지방 작가들은 작품을 실을 지면이나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죠. 서울에서 발행되는 주요 문예지에 단편소설을 열심히 투고해도 2∼3개월 지나도록 답장 하나 오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아무리 오래 활동했어도 지방 작가는 중앙에서 보면 그냥 ‘무명’일 뿐이에요. 대형 출판사에서 책을 낼 기회를 잡는 것도 정말 힘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씨의 올해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은 지방 작가들에게 큰 힘이 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정작 박씨는 “열심히 쓰지만 늘 등이 시린 동료 작가들을 떠올리면 1억원이라는 고료 액수가 너무 많은 것 같다”며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사용하던 본명을 지금의 필명으로 바꾼 건 2005년의 일이다. 신춘문예 당선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소설가 한승원(74)씨가 지어준 이름이다.

“내 이름의 ‘향’자는 원래 향기 향(香)인데, 한 선생님이 울릴 향(響)으로 정해주셨어요. 소설로 세상에 울림을 주라는 뜻이죠. 등단 직후부터 원고를 쓰면 꼭 한 선생님께 우편으로 보내 가르침을 받곤 했습니다.”

부산소설가협회장을 지낸 이복구(67)씨는 박씨의 또 다른 문학 스승이다. 이번 응모작도 탈고 후 이씨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조언을 구했다. 박씨는 “수상 소식을 듣고 ‘부산 문단의 자랑’이라며 제일 기뻐한 분도 이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한 ‘문학소녀’였다. 고교 시절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습작과 문예지 투고를 시작했다.

대학은 국문과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고교 교사이던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로 교육대학교에 들어갔다. 졸업 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뒤에도 문학의 꿈을 꼭 붙들고 매년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렸다.

어느덧 부산 문단의 중견으로 성장했지만, 등단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부단히 자신을 연마한 끝에 마침내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시도 문학을 떠날 수 없었어요. 문학은 내 인생의 전부입니다, 가족이 들으면 섭섭해할지 모르겠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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