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월드컵과 16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 모든 관심이 태극전사들의 발끝과 새로운 대통령에 쏠려 있던 그해, 나는 조금 다른 종류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관심사병.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자살이나 탈영 등으로 직속상관의 군 생활을 망칠 가능성이 높은 위험인물이란 뜻이다. 장교들 입장에선 지뢰만큼이나 무서운 존재다. 내가 이런 관심을 받게 된 건 무릎 때문이다. 이등병 시절, 유격훈련에서 오른쪽 무릎이 돌아간 것이다. 나는 국군광주통합병원으로 후송을 떠났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너는 뜨겁든지 차갑든지 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너를 토해낼 것이다. 군 병원엔 이런 말이 있다. 너는 제대할 정도로 아프든지 깔끔하게 낫든지 하라.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후송의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나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고, 제대할 정도로 아프지도 깔끔하게 낫지도 않았다. 결국 자대와 병원을 오가며 군 생활을 했다. 병원을 다녀올 때마다 계급은 올라가는데 아는 것은 없었다. 고참들은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나를 갈궜고, 후임들은 아는 것이 없는 나를 무시했다. 무심한 내 무릎은 여전히 아팠고 장교들은 내게 관심을 주었다.

폭언과 조롱과 아픔과 관심 속에서도 국방부의 시계는 쉼 없이 움직여 병장이 된 동기들은 중대의 실세가 되었지만 또 한 차례의 후송에서 돌아온 나는 진급이 누락되어 탄약고 말뚝근무를 섰다. 나는 신이 나를 토해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앞에 귀신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군 병원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남은 군 생활을 편히 지내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 제안이란 나와 같은 시기에 병원에 입원했던 한 친구의 자살 사건을 조사하라는 것이었다.

탄약고의 겨울은 끔찍했지만 지난 세월에 비하면 견딜 만했다. 든든한 동기들 덕분에 이젠 건드리는 놈도, 무시하는 놈도 없었다. 조금 더 편히 지내겠다고 수상쩍은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자대에서의 나는 무능력자에 부적응자이지만 그곳에서의 나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이란 걸 증명하고 싶었다.

전후방 육해공군뿐 아니라 해병대에 특전사, 베일에 싸인 정보부대까지 모여드는 곳, 병원이기 이전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성과 시스템을 가진 부대, 우리들이 그곳을 광통이라 불렀다.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 살고 싶어 했던 한 친구의 죽음을 조사했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칠수록 광통엔 전염병처럼 연쇄적인 자살 사건이 벌어졌다. 늘 미지근했던, 그래서 죽은 전우들과 살아남은 전우들의 사이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했던 나는 겨울과 봄의 사이에서 마침내 진실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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